고대사

쿠르스크 전투: 승리를 쟁취한 붉은 군대

프로호로프카, 결전의 대전차전

소련 제5전차군은 예비 진지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기하던 베테랑 부대다운 뜨거운 열정과 함께 일제히 전투에 돌입했다. 프로호로프카를 향해 진격하던 SS 기갑군단의 선봉 부대는 바로 이 신선하고 불같이 사기가 충천한 병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인력은 다소 적었지만 중전차는 더 많이 보유하고 있던 하우서(Hausser)의 지칠 대로 지친 전차 승무원들은 마침내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를 만나고 말았다.

짙은 먼지가 전장을 뒤덮으면서 티거 전차는 우월한 사거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고, 많은 전차가 T-34의 먹잇감이 되었다. 전장 곳곳에는 타오르는 전차 잔해가 널려 있었으며, 양측 모두 300대 이상의 전차를 잃었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손실을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쪽은 단연 독일군이었다. 격렬했던 기갑 공세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저녁 무렵, 소련군은 베레조프카(Berezowka)를 탈환하고, 숲을 돌파해 구원하러 나섰던 제3기갑사단과 그로스도이칠란트(Gross Deutschland) 사단의 주력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패색이 짙어진 독일군

독일군 입장에서 이 전투의 패배는 이제 명백한 사실이었다. 제7근위군이 SS군단의 후방으로 돌파한 벨고로드부터 북쪽의 오룔(Orel)에 이르는 모든 지역이 소련군의 손에 넘어갔다. 마을 곳곳에는 고립된 소규모 독일군 부대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동안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세 개의 고지는 이미 독일군에 의해 버려진 상태였고, 소련군은 그곳을 통해 가장 유리한 사격 진지를 손에 넣었다.

「치타델레」 작전 취소 명령

독일군의 실패, 그 직접적인 원인은 퓌러 히틀러 본인이 내린 명령이었다. 만슈타인을 거쳐 무선 통신으로 남부 집단군 사령부에 전달된 그 명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치타델레(Zitadelle) 작전은 지금 즉시 중지하라."

물론 양측이 같은 명령을 받는 것이 아닌 한, 이미 격렬하게 벌어진 전투를 순식간에 멈추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후퇴는 곧 처절한 후위전을 의미했고, 호트(Hoth)의 부대가 초기 진지로 복귀하는 데 무려 2주가 걸렸으며, 그 과정에서 추가로 상당한 손실을 치러야 했다.
북쪽에서는 크게 전진하지 못했던 덕분에 후퇴해야 할 거리가 짧았던 모델(Model)의 제9군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물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룔 지역의 상황은 여전히 절박했고, 만슈타인은 두 개의 기갑사단에게 북쪽으로 후퇴하라고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두 개의 사단은 위협이 날로 커지던 타간로그-스탈리노(Taganrog-Stalino) 방면으로 남하 파견되었다.

작전의 결과가 남긴 의미

「치타델레」 작전이 진행되는 내내 독일군의 두 협공 부대는 돌출부 기저부의 폭을 96km 이하로 좁히는 데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국방군의 자랑이던 스무 개의 기갑사단은 완전히 피를 말렸다. 비록 놀라운 수의 포로와 막대한 전리품을 그들의 전과로 돌릴 수 있다고 해도, 연합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러시아가 독일군보다 훨씬 수월하게 막대한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제4기갑군의 '죽음의 질주'는 러시아 땅에서의 전투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그해 12월이 되자 재편성된 제9군과 제4군은 드니프로(Dnieper) 강까지, 그리고 그 너머까지 후퇴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