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스탈린그라드 전투: '쥐 전쟁'이라 불린 지옥 같은 시가전

스탈린그라드의 전투는 단 하나의 거리, 공장, 주택, 지하실, 심지어 계단 하나까지를 두고 벌어진 처절한 공방전이었다. 독일군은 이 보이지 않는 도시전을 '라텐크리크(Rattenkrieg)', 즉 '쥐 전쟁'이라 불렀고, 그 참혹함을 풍자하는 신랄한 농담도 병사들 사이에 퍼졌다. "부엌을 점령해도 결국 우리는 거실을 두고 또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잠 못 이루는 밤, 쥐처럼 기어 다니는 정찰병

소련군 병사들은 사실상 반쯤 잠든 상태로 싸웠다. 경보와 야간 공격, 역습이 밤새 이어지는 통에 세 시간 연속으로 잠드는 것조차 사치였기 때문이다. 양측은 끊임없는 포격에 더해 무차별적인 기관총 사격을 서로에게 퍼부으며 적을 자극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야간 기습 작전을 위해 병사들은 폐허 더미 사이를 기어서 정찰을 나섰고, 이러한 기습은 독일군에게 큰 공포를 안겨주었다. 후방과의 연락은 수시로 끊겼는데, 특히 볼가 강 건너편에 자리한 총참모부와의 통신이 두절되곤 했다. 지휘부는 유일하게 남은 은신처인 지하실에 급조된 지휘소를 마련했지만, 순식간에 파괴되기 일쑤였다. 이 시기에는 한 채의 평범한 주택조차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될 만큼, 땅 한 조각의 가치가 목숨과 맞바뀌었다.

맘마예프 언덕과 곡물 엘리베이터의 혈전

높이 102미터의 맘마예프 언덕(Mamaev Kurgan)에서는 특히 잔혹한 전투가 벌어졌다. 독일 국방군은 이곳에 중포병을 배치해 볼가 강을 오가는 모든 선박을 격침시키려 했기 때문에, 언덕의 확보 여부는 전세를 좌우할 핵심이었다. 언덕은 수차롞 주인이 바뀌었지만, 독일군은 끝내 중포병을 설치하지 못했다. 한편 소련군이 맘마예프 언덕을 탈환하기 위한 역공을 감행했을 때는 하루 만에 1만 명 규모의 한 개 사단 전체가 궤멸당하기도 했다.

거대한 저장 사일로가 우뚝 선 곡물 엘리베이터(Grain Elevator)에서는 전투가 워낙 근접해서 벌어져, 소련군과 독일군 병사들이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파블로프의 집: 27일간 무너지지 않은 요새

시내 다른 지역에서는 야코프 파블로프(Yakov Pavlov) 소장이 지휘하는 소련군 소대가 방어하던 한 건물이 독일군의 공격으로 대부대와 고립된 뒤, 그 자체로 철벽의 요새로 변신했다. 훗날 '파블로프의 집(Pavlov's House)'이라 불린 이 건물은 도심 한복판의 광장을 내려다보며 지켰다. 병사들은 건물 주변에 지뢰밭을 설치하고 창문마다 기관총 진지를 구축했으며, 내부 칸막이를 허물어 부대 간 소통을 원활하게 했다. 이들은 무려 27일 넘게 버텼는데, 이는 당시 전투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다.

폐허 속 무용지물이 된 전차, 저격수의 공포

독일군은 600mm 구경의 초대형 박격포를 비롯한 중포병을 시내로 직접 끌어들였다. 그러나 볼가 강 동안에 배치된 소련군 포병은 계속해서 독일군 진지를 포격했다. 소련군 수비대는 폐허를 지혜롭게 방어 진지로 활용했는데, 폐허에 고정시켜 놓은 전차 포탑 함정을 설치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최고 8미터에 달하는 잔해 더미 속에서 독일군 전차는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간신히 전진하더라도 옥상에서 쏟아지는 소련군 대전차 화망에 걸려들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는 훗날 '저격수(sniper)'라 불리게 될 새로운 유형의 전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지칸(Zikan)'이라 불린 무명의 사수는 224명을, 바실리 자이체프(Vasily Zaitsev)는 전투 기간 동안 225명을 사살했다. 저격수는 먼 거리에서 은밀하게 표적을 조준해, 적을 사살하거나 중상을 입힌 뒤 동료들이 구하러 나오는 순간 그마저 제거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이러한 상시적인 공포의 분위기는 추축국 병사들의 사기를 갉아먹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처럼 극한의 조건들은 독일군의 진격을 눈에 띄게 늦추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명운을 건 승부

스탈린과 히틀러에게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국가의 생사를 건 판가름이 되었다. 소련군 최고사령부는 붉은 군대의 전략 예비대를 모스크바에서 볼가 강으로 이동시키고, 전국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항공 전력을 스탈린그라드로 전환했다. 양측 지휘관에게 가해진 압박 또한 극에 달했다. 독일군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Friedrich Paulus) 장군은 눈꺼풀이 멋대로 떨리는 증세를 보였고, 소련군의 바실리 추이코프(Vasily Chuikov) 장군은 손을 완전히 붕대로 감아야 할 정도의 습진을 앓았다.

11월, 석 달간의 학살과 값비싼 대가를 치른 완만한 진격 끝에 독일군은 마침내 강변에 도달해 폐허가 된 도시의 90%를 장악하고, 남은 소련군을 좁은 두 개의 포위망으로 분단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