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선 재편: 키너드의 결단
키너드(Kinnard)는 이 전투에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그는 특히 사단이 너무 광범위하게, 특히 서쪽으로 과도하게 분산 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그 결과 공수부대와 기갑부대 간의 협동 작전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에 키너드는 24일, 방어선을 축소하여 남쪽과 서쪽 방면에서 바스토뉴(Bastogne)에 더욱 가까운 위치로 재조정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재편성은 하마터면 늦을 뻔한, 정확히 때맞춤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그날, 독일군이 전투 내내 가장 위험했던 공격을 개시했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은 남서쪽과 북서쪽 측면에서 제26국민척탄병사단(26th Volksgrenadier Division)의 공격으로 엄호를 받으며, 막 도착한 기갑 증원 부대인 제15기갑척탄병사단(15th Panzergrenadier Division) 소속 제115연대를 바스토뉴 북서쪽의 헴루예(Hemroulle) 방면으로 진격시켰습니다.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길을 연 이 공격은 순조롭게 시작되었고, 계획대로라면 바스토뉴까지 돌파하는 데 성공할 듯해 보였습니다.
끝까지 버텨낸 수비대
미군의 첫 번째 방어선은 결국 돌파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비대와 제502공수보병연대 제1대대 일부 병력의 영웅적인 노력 덕분에, 독일군의 공격 세력은 헴루예와 샹(Champs)에서 저지될 수 있었습니다. 진격이 멈추자 독일군은 현지에서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하려 했지만, 땅이 얼어붙어 있어 끝내 실패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어떠한 엄폐도 없이 활짝 드러난 지형에서 전투를 강요당했고, 이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이어서 궁극적으로 섬멸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필사적인 마지막 시도의 끝
이 공격은 현지 독일군 지휘관이자 제26국민척탄병사단장인 하인츠 코코트(Heinz Kokott) 소장이 감행한 필사적인 시도였습니다. 당시 그의 손에 남아 있던 병력은 자신의 사단 잔존 병력, 제15기갑척탄병사단 제115연대의 생존 병력, 그리고 판처레어(기갑교도)사단 소속 제901연대뿐이었습니다. 이미 바닥을 드러난 독일군의 전력은 이 마지막 공세와 함께 사실상 소진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