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군의 전력과 구조적 약점
영국을 공격하기 위해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은 3개 항공함대에 총 1,800대의 폭격기와 1,000대의 전투기를 배치했다. 노르웨이에 주둔한 제5항공함대는 북동부에서 양동 작전을 담당했고, 네덜란드·벨기에·센 강 이북 프랑스에 배치된 제2항공함대, 브르타뉴와 하노르망디에 기반을 둔 제3항공함대가 주공을 맡았다.
독일 최고의 전투기인 메서슈미트 Bf 109(Me-109)는 성능이 뛰어났지만 항속거리가 짧아 런던 상공에 겨우 10분밖에 머물 수 없었다. 이에 독일군은 폭격기 호위를 쌍발 전투기 Bf 110(Me-110)에게 맡기려 했다. Bf 110은 체공 시간이 길었지만 기동성이 떨어져 폭격기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했고, 결국 그 자체조차 Bf 109 편대의 엄호를 받아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
폭격기 사정도 밝지 않았다. 루프트바페의 모든 폭격기(Ju 88, He 111, Do 17)는 작전 반경이 짧았고, 어느 것도 2톤 이상의 폭탄을 탑재할 수 없었다. 도시와 교통로에 대한 급강하 폭격용으로 설계된 Ju 87 슈투카는 적 전투기와 조우하는 작전에서 실망스러운 성능을 보여 곧 투입에서 제외되었다.
루프트바페의 강점은 수적 우세, 전투기 방어 무장의 우위(적어도 전투 초기 몇 주간), 그리고 나르비크에서 브레스트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원호를 따라 비행 기지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영국 전투기 사령부의 대응
3,000대에 달하는 독일 항공기에 맞서 영국 전투기 사령부(Fighter Command)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단 850대의 전투기뿐이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제13전투기 집단, 중부의 제12집단, 남서부의 제10집단, 남동부의 제11집단 등 4개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특히 제11집단이 공세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영국 왕립공군(RAF)의 주력은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스피트파이어였다. Me 109보다 느린 허리케인은 폭격기 요격 임무에 배치되었고, 빠르고 민첩하며 날개에 기관총 8정을 장착한 스피트파이어는 자국 영공에서 작전하며 독일 전투기보다 긴 체공 시간을 누릴 수 있어 방어 임무에 완벽히 부합했다.
더욱이 1940년 당시 영국은 세계 유일하게 종합적인 방공 체계를 갖춘 나라였다. 고도 5,000m에서 거리 200km까지 탐지 가능한 고공·장거리 레이더망, 저고도·중거리(200m~100km) 해안 레이더 기지, 해안사령부(Coastal Command) 지상 감시대, 그리고 수동 방어망이 그것이다. 이 요소들을 통합 운용함으로써 전투기 사령부는 확실한 경우에만 전력을 투입해 병력을 아낄 수 있었고, 이는 RAF의 수적 열세를 일부 만회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했다. 영국 항공 산업은 손실된 전력을 충분히 보충할 만큼 항공기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전투에서 죽은 파일럿은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었다. 숙련 인력의 부족은 근본적으로 또는 중장기적으로 영국 전투기 부대를 마비시킬 위험을 안고 있었다.
'독수리의 날'과 바다사자 작전 계획
1940년 8월 2일, 히틀러가 루프트바페에 영국 상륙 작전인 '바다사자 작전'의 활동 준비 단계 진입을 명령했을 때, 공격 계획은 이미 정교하게 수립되어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독수리의 날'(Adlertag)이라 불리는 대규모 출격으로 공세가 시작되며, 4일 안에 영국 전투기 부대를 섬멸하거나 북방으로 밀어내고, 이어 4주간의 집중 폭격으로 영국의 경제와 방어력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이 일정표가 지켜진다면 공중 작전은 8월 13일로 예정된 '독수리의 날'로부터 1개월 4일 후, 즉 9월 17일 — 바다사자 작전 개시 최후 기한 — 에 끝나게 된다.
공세의 현실: 좌절된 계획
8월 13일, 제2·제3·제5항공함대가 동시에 출격했지만 공습 간 협조는 엉망이었고 목표 식별도 부정확해 전투기 사령부는 모든 공격을 격퇴했다. 14일에는 악천후로 독일 항공기들이 지상에 묶였다.
15일, 공세가 전면화되었다. 루프트바페는 800km에 이르는 전선에 걸쳐 하루 2,000소티를 감행했고, 1,000대 이상의 항공기가 영국 상공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북해를 건너야 했던 제5항공함대는 20%의 손실을 입어 사실상 전투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이날 RAF는 974소티를 출격시켜 35대를 잃는 데 그친 반면, 독일군은 80대를 잃었다.
16일부터 18일까지 제2·제3항공함대는 공습을 이어갔으나 영국 방어선을 포화시키지 못했다. 교환비는 참담했다. 영국 항공기 100대를 격추하는 동안 루프트바페는 폭격기 375대와 전투기 100대를 잃은 것이다. Bf 110과 Ju 88은 스피트파이어에게 쉽게 압도되었고, 허리케인은 He 111 편대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Bf 109가 균형을 회복할 수 있었음에도, 괴링은 이들을 폭격기 직접 호위 임무에만 묶어두는 실책을 저질렀고, 이는 그 효율을 크게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