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벨베데레 고지 전투: 카시노 방면 연합군의 돌파

이 서한은 클라크 장군의 사령부에 폭탄이 터진 듯한 충격을 안겼다. 장군이 사람들을 뒤흔드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을 사령부의 모든 이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의 공격, 카시노 북서 고지에 도달하다

1월 30일, 미군의 공격은 마침내 카시노 북서쪽 고지대에 도달했다. 반 에크(Van Eck) 대령이 지휘하는 제7 아프리카 엽병대(전차 구축 부대)는 두 개 중대를 해체한 뒤 마리노 산(Monte Marino)을 점령했고, 이로써 테렐레(Terelle)로 이어지는 통로가 열렸다.

일곱 번째 총공격, 벨베데레 함락

2월 1일 새벽, 일곱 번째 총공격이 개시되었다. 862 고지의 서쪽 능선, 771 고지, 700 고지가 동시에 공격받았고, 이번에는 마침내 함락에 성공했다. 두 시간 후에는 915 고지가, 이어서 875 고지가 차례로 넘어갔다. 결국 벨베데레(Belvedere) 전역과 카살레 아바테(Casale Abate)는 온전히 프랑스군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1944년 2월 5일, 벨베데레 진지는 확고하게 확보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막대했다. 튀니지 저격병 연대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투입 병력의 절반 가까이가 희생된 것이다. 종군기자 피에르 이샤크(Pierre Ichac)는 몽사베르(Monsabert) 사단이 862 고지에서 격전을 벌였던 그 처참한 현장을 직접 찾아 기록을 남긴다.

산텔리아 평원, 전쟁이 남긴 황량한 풍경

산텔리아(Sant'Elia) 평원의 풍경은 불안하고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이쪽에는 올리브 숲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포병 진지가 빼곡히 숨어 있다. 저쪽에는 지붕이 무너진 채 버려진 듯한 가옥들이 보이지만, 가장 작은 헛간마저 하프트랙이나 지프를 은폐하고 있으며, 라디오 안테나는 나뭇가지 사이로 길게 뻗어 있었다.

더 멀리, 알맹없는 벌판에는 오직 텅 빈 공간만이 펼쳐져 있다. 밤에야 행인이 스칠 뿐, 낮에는 진창을 가르며 황급히 달려가는 차량들만이 드물게 지나갈 따름이다. 전장 곳곳에 흩어진 이러한 '죽은 지대'들은 너무나 완벽하게 비어 있어서, 적군조차 약간의 담력만 있다면 살아 있는 사람 한 명을 만나기 전까지 무기를 들고 오랫동안 그곳을 배회할 수 있으리라. 이것이야말로 전쟁이 지닌 수많은 역설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