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군(Eighth Army)은 영국 육군 소속 부대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특히 제1차 및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 참전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전역까지 이어지는 진격을 이끌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부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조직과 구성
제8군은 버나드 몽고메리를 비롯한 영국 장교들이 지휘했지만, 산하 부대는 대영제국과 영연방 전역은 물론 나치 독일에 점령된 유럽 국가들 출신으로까지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캐나다, 자유 프랑스, 인도, 뉴질랜드, 폴란드, 로디지아, 모리셔스, 영국 등 다양한 국가의 부대가 이 군에 배속되었습니다. 제8군에서 복무한 주요 부대로는 캐나다 제1군단, 영국 V군단, X군단, XIII군단, XXX군단, 폴란드 제2군단이 있으며, 하위 대부대로는 '사막의 쥐(Desert Rats)'라 불린 영국 제7기갑사단, 제51하이랜드 보병사단, 서부 사막 프랑스군 등이 있습니다.
이 부대는 사막 전쟁 기간 동안 처음에는 리비아의 이탈리아군과, 이후 이를 증원하러 온 독일 원정군인 아프리카 군단(Afrika Korps)과 차례로 맞서 싸웠습니다. '사막의 여우'라 불린 에르빈 롬멜이 두 번이나 이집트 국경에 육박했을 때, 이집트의 운명은 제8군 사령관의 어깨에 달려 있었습니다.
역사
사막 전쟁
제8군은 1941년 9월 서부 사막군(Western Desert Force)을 개편하여 창설되었으며, 앨런 커닝엄(Sir Alan Cunningham) 중장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당시 프랑스가 이미 전쟁에 7개 군을 투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번호는 이를 잇는 논리적 연속으로 부여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제8군의 첫 교전은 1941년 11월 17일, 키레나이카 국경을 넘어 아프리카 군단과 조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전세가 불리하게 기우자 중동 사령관 클로드 오킨렉(Sir Claude Auchinleck) 경은 커닝엄을 닐 리치(Neil Ritchie) 소장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러나 리치마저 롬멜의 공세를 막지 못하자, 결국 오킨렉이 직접 제8군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아프리카 군단은 마침내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저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오킨렉은 이 승기를 살리지 못했고, 중동 사령관직은 해럴드 알렉산더(Harold Alexander) 중장에게, 제8군 사령관직은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 중장에게 각각 넘어갔습니다.
몽고메리는 기존 제8군의 핵심이던 XIII군단과 XXX군단에 추격 전담 부대인 X군단을 추가하여 전력을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제8군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롬멜의 부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고, 리비아를 거쳐 튀니지까지 밀고 나아가 1943년 5월 추축군의 항복을 이끌어냈습니다.
이탈리아 전역
제8군은 시칠리아 침공과 이탈리아 본토 전역에 참전했습니다. 산하 부대들은 '부츠'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 끝자락에 베이타운 작전(Operation Baytown)의 일환으로 상륙한 뒤, 연합군의 동측면을 담당하며 북상하는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43년 말, 몽고메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준비를 위해 영국 본토로 전출되었고, 올리버 리스(Oliver Leese) 중장이 제8군 사령관직을 이어받았습니다.
몬테 카시노 전투
1944년 초 구스타프 방선에서의 교착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V군단을 제외한 제8군은 아드리아 해안 전선에서 로마 돌파를 목표로 하는 아펜니노 전선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제8군에 배속된 폴란드 제2군단이 마침내 몬테 카시노의 수도원을 함락시키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로마 함락 후 제8군은 다시 아드리아 해안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늦여름, 연합군은 새로운 독일 방어선인 고딕 방선(Gothic Line) 앞에서 발목을 잡혔습니다. 이 방선은 1944년 가을에야 돌파되었고, 연합군은 겨울이 오기 전에 포(Po) 평야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리스는 동남아시아 연합군 지상군(구 제11군집단) 사령관으로 전보되었고, 리처드 맥크리리(Sir Richard McCreery) 중장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전쟁의 종언
1945년 봄, 제8군은 공세를 재개했습니다. 볼로냐를 점령하고 4월에는 독일 C군집단의 주력 부대들을 고립·섬멸한 뒤, 이탈리아 북동부와 오스트리아 방면으로 신속히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이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티토의 부대는 베네치아 줄리아(Venezia Giulia) 지역을 선점하려 했고, 영국군보다 먼저 도착한 그들은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군정(military government) 수립을 적극적으로 방해했습니다. 나아가 영국 점령 하 오스트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보급 통행을 제한하고, 오스트리아 영내 일부 지역 장악까지 시도했습니다.
1945년 5월 2일, 뉴질랜드 제2사단이 유고슬라비아 제4군 및 슬로베니아 제9군단과 함께 트리에스테에 입성하며 이 도시를 확보했습니다.
평가와 유산
제8군은 창설 초기에 몇 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엘 알라메인에서 튀니지까지 이어진 진격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물류 성취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혹독한 지형과 악천후 속에서도 완강하게 싸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제8군은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주둔 영국군(British Forces Austria)으로 개편되며 그 임무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