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타나롯 사원으로 향하며: 발리에서 마주한 신앙과 일상의 풍경

타만 아윤 사원(Taman Ayun Temple) 관람을 마친 우리는 운전기사 뿌뚜(Putu)와 함께 타나롯 사원(Tanah Lot Temple)으로 향했다. 멩위(Mengwi)에서 약 한 시간 거리, 오후 시간대였다. 우리는 뿌뚜에게 잠시 차를 세워 회의도 겸해 점심을 먹자고 요청했다. 아침에 서비스드 아파트에서 직접 싸 온 음식이 있었다. 뿌뚜는 푸른 잔디가 깔린 길가 정자 아래 차를 세웠다. 나무 기둥 두 개가 놓여 있어 그곳에 앉아 식사를 했다. 마치 소풍을 온 듯 여유롭고 정겨운 시간이었다.

근처에 손수레 두 대가 서 있었고, 한 여인이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었다. 우리가 앉아 먹기 시작하자 그 여인이 다가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구경했다. 인도 거리에 서양인(피랑기)이 지나가면 현지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시선과 닮아 있었다.

양파 장수의 속셈

식사를 마치고 손수레 쪽으로 가보았다. 채소라고는 양파뿐이었는데, 크기가 아주 작았다. 여인과 어렵게 의사소통하며 양파 1kg에 20,000루피아(약 1,700원)라는 걸 알았다. 인도에서는 1kg에 100루피(약 1,6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작은 양파였지만, 그냥 사기로 했다. 여인이 저울로 달고 있는데, 남성 파트너(남편으로 추정)가 다가와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40,000루피아를 달라고 했다. 나는 거절의 의미로 고개를 젓고 양파를 내려놓았다. 여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영어로 "Idiot!(바보!)"라고 소리쳤다. 아마 그녀가 아는 유일한 영어 단어였을 것이다. 남편이 억지를 부리는 걸 이해 못 했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뿌뚜의 차에 올라탔다.

사원 입장료 30만 루피아, 그리고 상인들의 세계

약 한 시간을 달려 타나롯에 도착했다. 발리 타바난 리젠시(Tabanan Regency) 해안 앞바다, 육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대 힌두 사원이다. 뿌뚜가 입장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1인당 60,000루피아, 우리 다섯 명이니 총 30만 루피아(약 2만 5천 원)가 들었다. 인도에서는 어떤 사원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사원 입장에 높은 요금을 받고 있었다. 관광 수입이 국가 재정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거나, 이슬람 국가에서 힌두 사원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원 단지는 웅장한 필론 게이트(Pylon Gate)로 시작된다. 위쪽 기둥에는 피탐바르(Pitambar, 황금색 천)를 두른 긴 수염의 성자 상이 모셔져 있다. 게이트에서 해변까지 약 1km를 걸어야 하는데, 그 길 양옆으로 발리, 자바, 중국 출신 상인 수백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힌두 신들을 그린 그림들이 즐비했는데, 선명한 색채와 날카로운 콧날, 감정 어린 자세로 그려진 신들의 세계가 속세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듯 보였다.

루드락샤 10알에 60만 루피아, 코코넛 한 개 2만 루피아

물건 값은 인도보다 몇 배나 비쌌다. 중국인 상점에서 손목에 차는 루드락샤(Rudraksha, 보리수 씨) 10알짜리 묵주 가격을 물으니 60만 루피아(약 3,000원)라 했다. 인도라면 최대 20루피(약 320원)면 살 수 있는 것이다. 코코넛 한 개도 2만 루피아(약 1,700원)였다.

지혜의 자세로 선 사라스와티 상

시장 한구석에 백색 사라스와티(Saraswati) 상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조형미였다. 발리 양식의 이 상에서 여신은 연꽃 위에 서서 한 손에는 비나(Veena), 다른 손에는 베다(Veda), 세 번째 손에는 빈주라(Binjoura) 꽃, 네 번째 손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즈나나 무드라(Jnana Mudra)를 취하고 있었다. 여신의 발치에는 날개를 편 백조가 서 있었다.

독특한 양식의 문, 그리고 인도 성자 상

길이 끝나고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발리 특유의 입구 문이 서 있었다. 양쪽 기둥 구조가 마치 시카라반드(Shikharaband, 첨탑 양식) 사원을 정중앙에서 갈라 양옆으로 벌려 놓은 듯한 모양새다. 대나무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기도 했다.

바다 쪽 작은 기단들 위에는 여러 상이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인도 성자처럼 보였다. 굵은 루드락샤를 목과 팔에 두르고, 자타(Jata, 땋은 머리) 차림에 한 손엔 꽃, 다른 손엔 예배용 종(손종)을 들고 있었다. 머리에는 둥근 관을 쓰고 있었는데, 오늘 어떤 신도가 피탐바르를 입혀 놓아 상의 품위가 한층 더해 보였다.

굴랑간 축제 날, 바다에 막힌 타나롯

해변에 도착하니 밀물 때라 사원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섬에서 약 100m 떨어진 본당을 육지에서 바라만 봐야 했다. 파도가 섬에 부딪혀 되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바다도 굴랑간(Galungan) 축제를 맞아 사원의 계단과 벽을 쓰다듬으러 온 듯 보였다. 30만 루피아를 내고도 사원에 들어가지 못하니 헛돈 쓴 기분이 들었다.

성수를 얻지 못한 아쉬움

뿌뚜가 말해주길, 평소엔 바다를 건너 사원에 들어가 성수를 받아 몸에 뿌리고 가져오기도 한단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강에서 목욕하고 갠지스 강물을 떠 오는 것과 똑같은 관습이다. 하지만 오늘은 사원에 갈 수 없으니 성수도 받을 수 없었다.

해변에서의 대규모 예배, 노란빛 물결

해변 제단 앞에는 길이 45m, 폭 12m, 높이 1.2m쯤 되는 플랫폼이 있었고, 그 위에 높이 75cm 정도의 작은 영구 사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노란 우산들이 꽂혀 있었고, 바나나 잎, 코코넛 잎, 대나무로 만든 작은 쟁반에 예물(푸자)이 올려져 있었다. 플랫폼 전체는 고급스러운 긴 노란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백 명의 남녀가 전통 신복을 입고 앉아 있었고, 몇몇 제사장이 만트라를 외며 성수를 뿌리고 있었다. 온통 노란색과 흰색뿐인 엄숙한 분위기였다.

모든 남성은 수카사나(Sukhasana, 가부좌)로 앉아 있었다. 여성 대부분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부는 불교 승려처럼 무릎을 꿇고 발등을 바닥에 댄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 대규모 예배는 소리 하나, 분주함 하나 없이 고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데려오지 않았고, 남성들은 뿌뚜 같은 모자를 썼는데 앞부분이 매듭지어져 인도식 크라운(Crown)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예배 구역은 철제 격자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밖으로는 수많은 내외국인 관광객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예배에 집중했다. 격자 밖에서는 여러 여성이 노점에서 푸자 탈리(예배 접시)를 팔고 있었다.

합장 인사, 인도의 나마스카르와 닮은 예경

모든 남녀가 예배 중간중간 신상을 향해 합장(안잘리 무드라)하고 손을 이마에 대는 인사를 올렸다. 그 모습이 인도 힌두교도들이 사원에서 신에게 나마스카르(Namaskar)를 올리는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꾸따의 마트, 수입산 채소와 분유

오후 4시,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우리도 피곤해져 멩위로 돌아가기로 했다. 길은 발리의 주요 도시 꾸따(Kuta)를 지나갔다. 뿌뚜에게 큰 마트에 들러 채소와 우유를 사자고 했다. 인도라면 이쯤에서 차이(차)를 두세 잔 마셨을 텐데, 여기선 차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타반(Taban) 지역의 식당에 커피가 있었지만 우유도 설탕도 없었다. 우리에겐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한참을 달려 꾸따의 대형 몰 앞에 섰다. 뿌뚜 말로는 몰이지만, 인도 기준으론 중형 슈퍼마켓 정도였다. 각종 푸성귀가 많았다. 감자, 양파, 토마토, 우유, 과일도 풍성했다. 양파와 감자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었고, 용기 라벨에 가격과 원산지가 적혀 있었다. 대부분 뉴질랜드, 네덜란드, 호주, 인도 뭄바이산이었다. 바나나조차 수입산이었다. 발리산 바나나는 크기가 작고 신맛이 나며 덜 부드러웠다. 사과도 여러 나라에서 수입된 여러 종류가 있었다. 이 모든 수입 농산물 가격은 인도보다 몇 배 비쌌다.

우리는 며칠 치 채소와 우유 캔을 샀다. 우유 캔엔 젖소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분유에 단백질과 식물성 기름이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