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인도 임시 정부를 마비시킨 무슬림 연맹의 음모

인도 임시 정부를 마비시킨 무슬림 연맹의 음모

비렌드라 쿠마르 바르왈(Virendra Kumar Barnwal)은 이렇게 기록했다. "무슬림 연맹의 임시 정부 참여는 사실 지나가 매우 중요한 국면에서 전개한 내전 전략의 연장선이었다."

재무부를 넘겨준 사르다르 파텔의 판단

무슬림 연맹이 인도 임시 정부에 합류했을 때, 부총독 웨이벌 경(Lord Wavell)은 인도 국민회의에 재무부는 반드시 회의 측이 장악해야 하며 사르다르 파텔이 그 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를 단계별로 운영해 나가려면 이 부처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텔은 이미 지나와 무슬림 연맹 전체를 깊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재무부를 무슬림 연맹에 넘기고 자신은 내무부와 토후국 관련 부처를 쥐고 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독립 시점에 인도 내 토착 토후국들을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예산을 무기로 삼은 리아카트 알리 칸

임시 정부의 재무장관에는 무슬림 연맹의 리아카트 알리 칸(Liaquat Ali Khan)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리아카트 알리는 재무부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내무부였다. 차우드리 무함마드 알리(Chaudhry Muhammad Ali)는 리아카트 알리에게 재무부가 극히 중요한 자리라고 설득했다. 국민회의를 떠받치던 큰손들이 지쳐 버리도록 예산을 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차우드리 무함마드 알리는 인도 감사·회계청(Indian Audit and Accounts Service) 출신 공무원으로, 런던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한 인물이었다. 그의 제안에 따라 리아카트 알리는 재무장관직을 수락했고, 곧바로 지출 항목 하나하나에 반대와 수정 요구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슬림 연맹은 정부 안에 있으면서도 정부 마비를 노린 것이다.

내각을 얼어붙게 만든 첫 번째 예산

마울라나 아불 칼람 아자드(Maulana Abul Kalam Azad)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각의 무슬림 연맹 의원들은 정부 업무의 매 단계마다 방해를 일삼았다. 정부에 있으면서도 정부에 맞섰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리아카트 알리 칸이 제출한 첫 예산은 국민회의에 또 하나의 새로운 좌절이었다. 국민회의의 선언된 정책은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고 자본주의 사회를 점진적으로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자와할랄 네루와 나는 전쟁 기간 상인들과 산업가들이 벌어들인 이윤 문제를 여러 차례 논의한 바 있다. 이 수입의 상당 부분이 소득세로부터 숨겨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인도 정부가 소득세 환수를 위해 강경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리아카트 알리가 제출한 예산은 산업과 무역에 너무나 가혹한 세금을 부과해서 산업가들과 상인들이 벌벌 떨게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국민회의는 물론 나라의 상공업 전체에 영구적인 타격이 될 판이었다. 리아카트 알리는 예산 연설에서 산업가와 상인들의 소득세 납부 누락 혐의를 조사하고 미납 세금을 추징하기 위한 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그리고 이 제안들이 국민회의 선언문을 토대로 마련되었다고 공언했다."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상인과 산업가를 공개적으로 두둔할 처지가 아니었다. 리아카트 알리는 매우 교묘하게 움직였다. 그는 미리 내각의 승인을 받아 두면서 예산이 공산주의 정책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해 놓고는, 세금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내각에 알려 주지 않았다. 예산이 발표되자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라자고팔라차리와 사르다르 파텔은 분노를 터뜨리며 이 예산에 반대했다."

펜 한 명도 채용하지 못한 각료들

재무장관으로서 리아카트 알리 칸은 정부의 모든 부처에 개입할 권한을 손에 넣었다. 그는 모든 제안을 거부하거나 수정했고, 그의 활동으로 내각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각료들은 리아카트 알리 칸의 허가 없이는 하급 직원 한 명조차 채용할 수 없었다.

리아카트 알리 칸은 국민회의 각료들을 혼란에 빠뜨려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간샤암다스 비를라(Ghanshyamdas Birla)는 간디와 지나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리아카트 알리 칸을 여러 차례 설득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국민회의의 요청으로 부총독이 직접 리아카트 알리 칸과 면담하여 세율을 상당 폭 낮추었다.

런던 회담, 그리고 분단으로 향하는 길

국민회의와 무슬림 연맹 사이에 깊어지는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 1946년 12월 3일부터 6일까지 런던에서 회의가 열렸다. 영국 총리 애틀리(Mr. Attlee), 부총독 웨이벌 경, 국민회의 총재 자와할랄 네루, 무슬림 연맹 총재 무함마드 알리 지나가 참석했다. 그러나 이 회의 역시 양측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영국 정부는 인도의 미래를 온전히 확인했고, 이제 인도 분단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