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문명이 일어나기 전, 비옥한 토양과 강, 평원을 지닌 그리스 북부는 발달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200년경부터 시작된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에는 이미 에게해를 건너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문명이 탄생하고 도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발달된 기술과 풍부한 식량은 그리스가 반드시 확보하고 싶은 것이었죠.
이에 그리스는 남부의 기후 조건을 살려 올리브와 포도, 곡물을 재배하고, 이를 가공한 작물과 곡물을 무역을 통해 교환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해안 지역과 섬들이 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리스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된 에게해 문명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의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에게해 문명이란?
동지중해 연안, 유럽 땅에서 탄생한 청동기 문명을 에게해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에게해 문명은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을 축으로 하며, 트로이 문명과 키클라데스 문명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크레타 문명
시리아·팔레스타인 근처, 그리고 이집트와 그리스 한가운데에는 크레타라는 섬이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방 문명과 그리스를 잇는 무역의 중심지로서 매우 유리한 위치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 지중해 무역으로 번성한 도시 크노소스에 물자를 저장하고 재분배하는 창고 역할과 왕족의 거주지 역할을 겸한 궁전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역을 통해 번영했기 때문에 외부 세력에 대한 경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했고, 성벽 없는 궁전이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애초에 섬 자체가 바다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였기 때문에 성벽이 불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원전 1600년경, 각 도시 국가들은 종교적 권위를 활용해 중앙집권 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하며 크레타 문명은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할수록 삼림 벌목이 진행되고 환경 파괴가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환경 파괴가 점차 문명 전체의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미케네 문명
기원전 1600년경, 북쪽에서 그리스 본토로 이주해 온 고대 그리스인들은 크레타와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미케네 문명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즉, 미케네 문명은 에게해 문명 후반부에 등장한 문명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케네 문명을 이룬 그리스인들은 거석(巨石)을 쌓아 만든 요새 왕궁을 미케네를 비롯해 티린스, 필로스 등에 건설했습니다. 미케네 문명은 이러한 왕궁을 중심으로 작은 왕국들을 세우는 형태로 확산되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다수의 병력이 함께 움직이는 등 개방적이던 크레타 문명과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크레타가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모이는 곳이었다면, "그리스 본토는 산악 지대로 나뉘어 있다"는 지리적 조건과 "곡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환경 역시 외부를 경계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곡물 부족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인근 도시를 침공해 자원을 빼앗으려는 세력이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케네의 정치 체제는 공납 왕정(貢納王政)이라 불렸습니다. 전제적인 권력을 지닌 왕 아래의 관료 조직을 통해 지방 마을에서 농산물, 가축, 무기 등 각종 공예품을 공납으로 징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원전 15세기, 미케네 문명을 이룬 사람들은 크레타마저 침공하여 지배하게 됩니다. 요새 왕궁을 건설할 만큼 군사적 성향이 강했던 미케네 문명 앞에서, 개방적이었던 크레타 문명은 결국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15세기에 크레타를 장악한 뒤, 미케네의 세력은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에게해 문명에 포함되는 다른 문명들
에게해 문명에는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 외에도 트로이 문명과 키클라데스 문명이 포함됩니다.
- 트로이 문명: 기원전 2600년~기원전 1200년, 아나톨리아 반도의 트로이(고대 그리스어로 '일리오스')가 중심
- 키클라데스 문명: 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년, 키클라데스 제도가 중심
특히 아나톨리아 반도의 트로이 문명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한 미케네 문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소멸했습니다.
그리스의 에게해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 미케네와 트로이 문명 아래 번성하던 수많은 왕국이 갑작스럽게 멸망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이처럼 여러 나라가 단숨에 무너진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암흑기
기원전 1200년경 그리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멸망에 이르렀다고 추정됩니다.
- 공납 왕정의 한계 도달
- 기후 변화
- 외부 세력의 침입
기후 변화로 식량이 부족해지면, 그때까지 번성했던 도시로 침입자가 몰려들고 정치적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곤 합니다. 미케네 문명도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무너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그리스는 암흑기라 불리는 시대에 접어듭니다. 흥미롭게도 그리스 신화에서는 트로이 전쟁이 이 대멸망의 원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화 속 이야기지만, 트로이 전쟁은 전혀 허구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대규모 전쟁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기원전 17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 반도로의 침입이 간헐적으로 반복된 것이 트로이 전쟁의 원형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이 거듭되면서 문명이 쇠퇴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암흑기는 본래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일어나야 할 철기 시대로의 전환기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 시기 동안 인구는 급감했고, 그때까지 사용되던 문자는 잊혀졌습니다. 왕국의 주민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아나톨리아 반도 서안과 에게해의 섬들로 이주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는 약 400년에 걸친 긴 정체기를 보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