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까지 무려 25년 가까이 '인류의 할머니'로서 인류 기원의 상징으로 군림해 온 루시(Lucy), 그리고 약 6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던 당대 최고(最古) 호미닌 오로린(Orrorin)에 이어, 인류의 요람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학자들의 발굴 열기가 한층 뜨거워졌습니다.
2001년, 운명적인 해
주요 발굴 멤버
- 마하마트 아두움(Mahamat Adoum)
- 알랭 보빌랭(Alain Beauvilain)
- 미셸 브루네(Michel Brunet)
- 아운타 짐두망바예(Ahounta Djimdoumalbaye)
- 파노네 공디베(Fanoné Gongdibé)
발견 경위
2001년 7월 19일, 고인류학자 미셸 브루네(Michel Brunet)는 시속 100km를 넘는 강풍이 몰아치고 모래폭풍이 지형을 수시로 바꿔놓는 차드 북부 드주라브(Djourab) 사막에서 탐사를 이끌었습니다. 자연이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곳은 지형조차 덧없이 변하는 곳이었죠. 모래는 단 몇 시간 만에 귀중한 화석을 드러냈다가 다시 묻어버리기 때문에, 연구진에게는 언제나 빠른 판단과 행동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탐사의 결정적 발견은 뛰어난 화석 사냥꾼으로 명성이 높던 아운타 짐두망바예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동료 두 명(보빌랭과 아두움)이 북쪽으로 향하는 동안, 그는 앞서 걷던 공디베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검은 맥반석(모암)에 박혀 있는 일종의 검은 구체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근처에서는 이빨 화석도 함께 발견되었죠. 그 구체는 퇴적층에 붙어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뒤집어 확인한 순간 그것이 두개골임을 알아차립니다.
주변 반경 500㎡ 안에서 연구팀은 여러 개의 턱뼈와 이빨 등을 추가로 찾아냈습니다. 정밀 분석 결과, 이 두개골은 무려 70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미닌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당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여겨지던 오로린보다 100만 년 이상 앞선 존재였던 것입니다. 학계는 발칵 뒤집혔고, 발굴을 총괄했던 브루네는 이 화석에 고란(Goran)어로 '삶의 희망'을 뜻하는 '투마이(Toumaï)'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투마이는 인류 계보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자입니다.
발견이 남긴 의미와 파장
투마이의 출토는 기존의 인류 진화 지식을 근본부터 뒤흔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인류와 유인원의 계통이 갈라진 시점을, 종전에 생각했던 약 600만 년 전보다 훨씬 앞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또한 이 발견은 프랑스 고생물학자 이브 코팽(Yves Coppens)이 제창한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 가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가설은 케니아 리프트 밸리 일대의 기후 격변이 인류와 유인원의 분화를 촉발했다는 내용인데, 문제는 투마이가 그 변화가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지역에서 한참 서쪽으로 떨어진 차드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설명되던 분화 서사에 균열이 생긴 셈입니다.
결국 학계는 새로운 종 Sahelanthropus tchadensis(차드 살헬유인원)을 신설하게 되었으며, 이 종은 침팬지와 호모(Homo) 계열이 갈라진 기점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발견은 인류 요람의 지리적 기원을 한층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인류는 어쩌면 차드에서 싹텄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또 다른 호미닌이 등장해 이 지도를 다시 그릴 그날이 올 때까지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