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꼬리로 묶인 개 두 마리 — 1944년 가을, 보주 산맥 전선의 기록

꼬리로 묶인 개 두 마리 — 1944년 가을, 보주 산맥 전선의 기록

1944년 9월 20일부터 22일 사이, 프랑스 제2군단(2e C.A.)이 담당한 전선에서 진행된 작전은 적 부대와의 접촉 지점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뚜렷한 목표를 갖지 못했다. 뤼르(Lure)에서 일쉬르두브(Isle-sur-Doubs)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진격한 브로세(Brosset) 장군의 제1자유프랑스사단(1re D.F.L.)은 불과 3~4km밖에 전진하지 못한 채 끊임없는 저항선 앞에 막혔다. 모든 통행로에는 참호용 가시장벽(abatis)과 셀 수 없이 많은 지뢰가 설치되어 있었다.

북쪽에서는 뒤비지에(du Vigier) 장군의 제1기갑사단(1re D.B.) 역시 멜리제(Mélisey)를 조금 지난 뤼르~티요(Thillot) 도로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9월 23일, 제2군단 전선의 교전선은 사실상 고정되었다.

'꼬리로 묶인 개 두 마리'라는 표현

바로 같은 날, 미 제6군단을 지휘하던 트러스콧(Truscott) 장군이 드몽사베르(de Monsabert) 장군에게 보낸 서신은 이 시기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변수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미 제7군이 보주(Vosges) 산맥 북서쪽으로 북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미국 장군은 이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꼬리로 묶인 개 두 마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버티고 있는 격이다."

비세 장군의 신속한 방어선 재건

제1자유프랑스사단과 제1기갑사단이 마주한 저항은, 독일 제19군을 지휘하던 비세(Wiese) 장군이 얼마나 빠르게 강력하고 깊이 있으며 연속적인 방어 진지를 구축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긴 후퇴 과정에서 살아남은 대부대들에게 질서를 회복시키는 데 최대의 에너지를 쏟았고, 본토에서 도착한 수많은 증원 부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토토트 기구(Organization Todt)의 협조와 프랑스 주민들에 대한 징용 노동력을 동원해, 그는 놀라울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십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완경사면(glacis)으로 덮인 이중 방어선을 완성했다. 그리고 군의 주력을 이 전선에 집중시켜, 더 후방에서 주저항선(Hauptkampflinie) 조직을 마칠 시간을 벌려 했다. 이 전진 진지에는 4개 사단이 배치되어 있었고, 히틀러는 9월 21일 이들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에게 물러설 경우 처형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었다.

플랑셰레민 돌파

그럼에도 제1기갑사단과 제1자유프랑스사단의 합동 공격은 9월 28일 독일군의 전진 진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플랑셰레민(Plancher-les-Mines)까지 뻗은 뚜렷한 돌출부를 형성하면서, 보주 산맥 통행로로 이어지는 첫 번째 잠금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돌파는 벨포르 회랑(Belfort Gap)을 방어하던 독일군 우익의 끝단에서 일어났다. 더 북쪽의 독일군 배치는 불연속적이었고, 티요의 경우처럼 통신 요충지 방어에 국한된 것으로 보였다. 또한 좌익에서는 미군이 레미르몽(Remiremont)을 해방한 뒤 곧 르톨리(Le Tholy)와 제라르메(Gérardmer)에 도달할 의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여건에서 보주 산맥을 넘는 진격은 가능할 뿐 아니라 당장으로서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드라트르 장군의 계획과 그 좌절

결국 드라트르(de Lattre) 장군은 제1군 우익의 노력을 좌익으로 전환하면,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알자스 침입을 확보할 수 있고, 동시에 벨포르 회랑을 방어하는 독일 사단들을 포위 위협함으로써 격돌전을 피해 전력을 아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미군이 제라르메를 넘겨주는 즉시 그곳을 발판 삼아 슐루흐트(Schlucht) 방향으로 보주 산맥을 넘는 작전을 시도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제라르메 방면에서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 미군 지휘관은, 레미르몽 상류에서 모젤(Moselle) 계곡과 모젤로트(Moselotte) 계곡을 가르는 능선의 뤽(Rupt)과 롱구트(Longegoutte) 숲을 장악하고 있는 자기 부대를 최대한 빨리 인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제2군단은 르티요, 샤토랑베르(Château-Lambert), 롱샹(Ronchamp) 앞에서 적의 전반적인 경화와 신속한 증원 움직임을 확인했다. 전선을 확장할 때는 아니었던 것이다.

계획 변경: 롱구트 능선으로

드라트르 장군이 이 확장에 동의하자마자, 제6연합군집단을 지휘하는 디버스(Devers) 장군은 미 제7군의 무게중심을 더 북쪽으로 옮기고, 남쪽의 제6군단을 생디에(Saint-Dié) 방면으로 이동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제1군이 오다니엘(O'Daniel) 장군의 미 제3사단 전체를 인수해야 했다. 동시에 제라르메~슐루흐트를 거치는 기동은 우리 손을 벗어나 버렸다.

이에 드몽사베르 장군은 새로운 공격 기점으로 모젤과 모젤로트의 분수령, 즉 미 제3보병사단 우익 부대를 인수해야 할 롱구트 능선을 택할 것을 제안했다. 그곳에서라면 코르니몽(Cornimont)을 거쳐 호넥(Hohneck) 방향으로, 그리고 모젤로트 하류·상류 계곡을 통해 알자스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출구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지만, 우리의 역량 안에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10월 2일, 드몽사베르 장군은 10월 4일 발동 예정인 작전에 대한 명령을 하달했다. 주공 임무는 제1군단 타보르(tabors) 전선에서 교체되어 나온 필자의 사단, 제3알제리보병사단(3e D.I.A.)에 맡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