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에 안장되어 있고, 프랑스 본토와 해외 데파르트망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마르티니크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까지 있다. 빅터 숄셰르(Victor Schœlcher)는 프랑스의 국가적 기억 속에서 확실히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1848년 4월 27일, 노예제 폐지령에 서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1804년 파리의 가톨릭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한 번의 출장을 계기로 노예제 폐지 운동에 평생을 헌신하게 된다.
출장지에서 목격한 노예의 참상
1828년, 숄셰르는 아버지의 명을 받아 가문의 도자기 사업 판매 대표로서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 파견되었다. 그는 쿠바 노예들의 처참한 운명을 목격하고 깊은 충격을 받은 채 돌아왔다. 흥미롭게도 당시 그는 즉각적인 노예제 폐지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1830년, 《파리 리뷰(Revue de Paris)》에 게재한 「흑인들에 관하여(Des Noirs)」라는 글에서 그는 노예들의 열악한 상황을 강력하게 고발하면서도 점진적인 폐지를 지지했다. 그는 "노예들은 무지와 노예제의 온갖 악습을 안고 주인의 손에서 떠나기 때문에, 사회에도 자기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쓰며,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예 무역을 종식시켜 그 근원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각 폐지론자로의 전환
언론인이 된 숄셰르는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특히 노예제 폐지 이후 영국 식민지의 미래를 연구하기 위해 현지를 찾았다. 이러한 경험을 거치면서 그는 노예제 즉각 폐지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완전히 전환했고, 자주 드나들던 공화파 및 프리메이슨 모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후 동부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며 무슬림 세계의 노예제 실태를 직접 관찰한 뒤, 그동안 발표했던 수많은 기사를 한데 엮어 1847년 『최근 2년간의 노예제 역사(Histoire de l'esclavage pendant les deux dernières années)』라는 책을 출간했다.
노예제 폐지령의 서명자가 되다
1848년 2월 혁명 직후, 숄셰르는 프랑스 식민지 노예제 폐지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법령을 준비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몇 달 후 그는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 양쪽 모두에서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국민의회에서는 특히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진보적인 입장을 굳건히 지켰다.
말년과 남긴 유산
제2제정 시기에는 강제로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지만, 제3공화국 성립 후에는 다시 의회 정치인으로 복귀했다. 한편으로는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에 관한 저서를 비롯해 여러 책을 집필하며 지식 활동에도 매진했다. 그는 1893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1949년 프랑스가 그를 기리기 위해 팡테옹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