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치오란 어떤 지역인가?
라치오(Lazio)는 이탈리아 중서부에 위치한 고대 지역으로, ‘라티움(Latium)’이라고도 불립니다. 원래 이 지역의 범위는 알바노 언덕(Alban Hills) 일대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기원전 500년경 무렵에는 티베르 강 남쪽에서 몬테 치르체오 곶(Monte Circeo)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고대 라치오는 북서쪽으로 에트루리아(Etruria), 남동쪽으로 캄파니아(Campania)와 맞닿아 있었고, 동쪽은 삼니움(Samnium), 북동쪽은 사비니(Sabini), 아이퀴(Aequi), 마르시(Marsi) 부족의 영토와 경계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의 라치오 주는 이보다 훨씬 넓어, 북쪽의 피오라 강(Fiora)에서 남쪽의 가릴리아노 강(Garigliano)까지 이어지는 해안 평야 전체를 포괄하며, 동쪽으로는 아펜니노 산맥에 경계를 둡니다. 라치오의 역사는 고대 로마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라틴족의 기원과 문화
‘라틴족(Latini)’은 기원전 2천년기에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한 인도유럽계 부족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원전 1천년기 초 수백 년에 걸쳐 이들은 알바노 언덕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민족 집단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일대는 외부와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방어하기에 유리한 자연 요새였습니다.
이곳에 정착한 라틴 부족들은 남부 이탈리아의 철기 시대 문화와 에트루리아 남부의 빌라노바(Villanovan) 문명 모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라틴족은 화장(火葬) 풍습을 따랐으며, 유골을 빌라노바식 항아리에 담거나 생전에 살던 오두막을 충실히 재현한 ‘집 모양 항아리’에 안치해 매장했습니다. 이러한 매장 용기의 장식은 단순한 기하학 문양으로, 같은 무덤에서 출토된 면도칼, 방추차, 무기, 브로치 등 청동기에 새겨진 무늬와 비슷합니다. 알바노 언덕 무덤에 사용된 재료는 오늘날 로마 지역 무덤의 것과 유사하지만, 간혹 더 거칠고 조악한 느낌을 줍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진출과 후퇴
기원전 600년경 에트루리아인들이 라티움을 점령하고 로마에 정착하면서, 에트루리아 문명과 예술의 영향력은 로마는 물론 다른 라틴 도시들에도 폭넓게 미쳤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곧 남부 에트루리아의 강대한 도시들에 필적하는 대도시로 성장했고, 인근 도시들보다 우위에 서게 됩니다.
연대기 전통에 따르면 기원전 509년에 로마인들의 반란이 에트루리아인들을 로마에서 몰아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라틴족과 그리스인의 연합 세력이 에트루리아군의 라티움 후퇴를 주도하여, 기원전 475년경에 이들을 몰아냈습니다.
라틴 동맹의 시대
에트루리아인들이 물러난 뒤 라티움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었고, 지역은 황폐해졌습니다. 로마는 인근 도시들에 대한 패권을 잃었고, 이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원전 5세기 내내 라틴 동맹(Latin League)은 로마에 자신들의 정책을 강요했습니다. 매년 라틴 도시들의 대표단이 독재관을 선출했고, 이 독재관은 로마 군대를 포함한 연합군 전체를 지휘했습니다. 이 동맹에서는 에트루리아 시대에 로마가 누렸던 지도권을 투스쿨룸(Tusculum)이 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로마의 영토는 시가지에서 여섯 번째 마일스톤을 넘지 못할 정도로 좁았습니다.
주변 세력의 위협과 로마의 남하
라틴 민족은 인근의 호전적인 세력들—안티움(Antium)에 거점을 둔 볼스키(Volsci)족과 산간 지대를 장악한 아이퀴족, 그리고 이들과 적대적으로 행동한 프레네스테(Praeneste)와 티부르(Tibur)—의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코리올라누스(Coriolanus)의 전설은, 기원전 5세기 초 로마가 아르데아(Ardea)와 아리치아(Aricia) 편에 서서 볼스키족과 싸우면서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기원전 5세기 말에는 레피니 산(Monti Lepini) 일대에 로마의 식민 도시들이 세워졌습니다.
로마와 라틴 동맹의 대결, 그리고 패권 확립
기원전 4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는 서로의 불화로 약화된 라틴 형제 도시들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358년에는 로마와 라틴 연합이 대등한 관계에 기초한 동맹 조약을 체결하고, 양측이 번갈아 동맹군의 독재관을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국력이 계속 커지면서 두 개의 로마 부족이 라틴 영토 안에 설치되었고, 마침내 기원전 340년 로마와 라틴족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은 기원전 338년 라틴족의 패배와 그들의 동맹 해체로 끝났습니다. 이후 라틴 도시들에는 자치권이 제한되거나 박탈된 형태의 정치 지위가 부여되었습니다. 이로써 로마의 패권은 라치오에서 완성된 기정사실이 되었고, 라틴 지방의 생활은 이내 로마 도시의 방식을 본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