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령 콩고란 무엇인가?
벨기에령 콩고(Belgian Congo)는 1908년부터 1960년까지 벨기에가 통치한 아프리카의 식민지로, 오늘날 콩고 민주 공화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식민지는 국제 사회가 콩고 자유국 시절의 학대 행위에 분노를 표명하고 감시와 책임 소재를 요구하면서 압박이 가해진 결과, 벨기에 의회가 이전의 사유 식민지였던 콩고 자유국을 대체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다.
벨기에의 공식적인 태도는 전형적인 보호자주의였다. 아프리카인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호받고 교육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콩고인들에게는 입법상의 역할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지만, 전통 지배자들은 세금 징수와 노동자 모집을 담당하는 대리인으로 활용되었으며, 협조하지 않는 지배자들은 축출되었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와 영국이 자국 식민지들과 함께 독립을 준비하고 있을 때조차, 벨기에는 여전히 콩고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이 부모와 자식처럼 공존하는 이상적인 나라'로 묘사하며 현실을 외면했다.
경제 개발과 강제 노동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의 민간 기업들이 벨기에령 콩고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다. 면화, 유지야자, 커피, 코코아, 고무를 재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과 목장이 곳곳에 건설되었다. 지하에서는 금, 다이아몬드, 구리, 주석, 코발트, 아연이 채굴되었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식민지는 미국에게 중요한 우라늄 공급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성장의 이면에는 잔혹한 착취가 있었다. 1922년 벨기에에서 통과된 법률에 따라 아프리카인들은 4년에서 7년짜리 계약을 맺은 도제 노동자 신분으로 광산과 농장에서 혹사당했다. 도로, 철도, 발전소, 공공건물 역시 강제 노동을 통해 건설되었다.
저항 운동과 독립으로의 길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은 식민지 체제가 수립된 초기부터 끊임없이 이어졌다. 동부 여러 지역에서는 1919년 봉기가 일어나 1923년에야 비로소 진압되었다. 1920년대에는 반(反)유럽 성향의 종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서부의 킴방구주의(Kimbanguism)와 흑인 선교회, 남동부의 키타왈라(Kitawala)가 대표적이다. 불만의 불씨는 대공황 시기(1931~1936)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더욱 거세졌다.
당시 정치 결사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혁가들은 문화 클럽 형태로 조직에 나섰다. 1950년 바콩고족을 위해 설립된 아바코(Abako)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최초의 전국 단위 콩고 정당인 콩고 국민운동은 1958년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를 비롯한 콩고 지도자들에 의해 창당되었다.
1959년 1월, 콩고 독립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린 직후 레오폴드빌(현 킨샤사)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같은 해 말에는 벨기에군과 콩고인들 사이에 격렬한 유혈 충돌이 벌어졌고, '근미래의 콩고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던 벨기에는 태세를 급격히 전환하여 콩고 독립 준비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콩고는 1960년 6월 30일 독립 공화국으로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