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그두넨시스(Lugdunensis)는 루구두넨시스(Lugudunensis)로 표기되기도 하며, 갈리아 루그두넨시스(Gallia Lugdunensis)라고도 불린다. 로마 제국의 속주 가운데 하나로, 갈리아 콤마타(Gallia Comata)를 구성하는 이른바 '세 갈리아' 중 하나였다. 수도 루그두눔(오늘날 프랑스 리옹)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센 강과 루아르 강 사이의 광대한 지역 전체를 아울러 브르타뉴 반도와 대서양 연안까지 미쳤으며, 훗날 파리로 발전하게 될 지역 역시 이 속주에 포함되어 있었다.
정복과 속주 편입
이 지역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58~50년에 벌인 갈리아 전쟁 과정에서 정복되었고,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아래 공식적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원래 이 일대는 지중해 연안에 식민지를 세운 그리스인들이 켈티카(Celtica)라 불렀던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루아르 강 이남의 켈티카 지역은 분리되어 다른 지역들과 함께 아키타니아(Aquitania) 속주를 이루게 되었다.
완만하게 진행된 로마화
루그두넨시스는 영토가 너무나 광대하고 토착 세력이 강해 고유의 개성을 쉽게 잃지 않았다. 또한 내륙 농촌 중심의 지역이었고 지중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인접한 나르보넨시스(Narbonensis) 속주처럼 신속하고 철저하게 로마화되지는 못했다. 켈트어는 삼림 지대에서는 4세기까지 명맥을 이어갔으며,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무려 근대까지 살아남았다.
도시의 성장과 부족의 흔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생활은 꾸준히 발전했다. 부족 단위의 촌락들은 격식을 갖춘 도시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공동체로 자리 잡았고, 그중 상당수는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여 웅장한 공공 건축물들을 갖추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들 도시의 이름은 대개 도시 자체의 명칭이 아니라 그 땅에 살았던 부족의 이름에서 따온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당시에도 부족과의 연결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까지 아미앵(Amiens)과 파리(Paris) 등의 도시명은 암비아니(Ambiani)족, 파리시이(Parisii)족 같은 고대 갈리아 부족들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