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키다모스 전쟁이라는 이름은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 2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에우리폰티다이 왕조에 속한 인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첫 국면인 아르키다모스 전쟁을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동료였던 플레이스토아낙스가 기원전 445년 추방되면서, 한동안 아르키다모스 2세가 스파르타의 유일한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429년 플라타이아를 포위했고, 기원전 428년에는 아티카를 침공했습니다. 그의 사망 시점은 기원전 427년 여름으로 추정되며, 이후 그의 아들 아기스 2세가 기원전 426년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아르키다모스 전쟁의 두 단계
이른바 아르키다모스 전쟁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페리클레스 집권기 (기원전 431년 4월 ~ 429년 9월)
- 역병과 페리클레스의 후계자들의 시대 (기원전 429년 봄 ~ 421년), 니키아스의 평화(기원전 421년)로 종결
제1단계: 페리클레스의 지휘 아래 (기원전 432~429년)
흥미롭게도 전쟁의 도화선은 술에 취한 자들이 당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은 어느 진영에도 명확히 속하지 않은 듯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스파르타, 그중에서도 코린토스 쪽에 우호적인 세력이었습니다.
- 테베의 플라타이아 기습 (기원전 431년 4월): 친(親)스파르타·친코린토스 성향의 테베는 아테네에 적대적이었습니다. 테베는 기원전 519년부터 아테네의 동맹이었으면서도 보이오티아 코이논(동맹체) 가입을 거부해 온 플라타이아를 공격했습니다.
- 아테네의 만전 대비: 아테네는 플라타이아에 원군을 파견했고, 페리클레스는 전권을 위임받는 '스트라고스 아우토크라토르'(최고 사령관)로 임명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본토 공세에 대비해 방어에 불필요한 인구를 도시 밖으로 대피시키고 식량 공급을 확보하는 한편, 동맹군을 준비했습니다.
- 해상 반격과 스파크테리아의 승리: 특히 해상에서 강력히 맞서 나선 아테네는 함대를 엘리스, 아카르나니아, 메세니아, 아르골리스 연안으로 파견했고, 필로스 앞바다에서 스파크테리아 전투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시기의 전세는 전반적으로 아테네에게 유리했습니다.
- 역병의 그림자: 그러나 아티카에서 피난 온 난민들로 과밀해진 도시에서 발생한 아테네 대역병이 모든 것을 바꿔놓습니다. 페리클레스도 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역병은 포티다이아를 비롯한 그리스 여러 지역으로 번졌습니다. 파트라스와 나우파크토스에서 포르미오가 거둔 승리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상당한 군사력을 상실했습니다.
제2단계: 니키아스와 클레온의 시대 (기원전 429~421년)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는 델리온에서의 패배를 거치며 결국 니키아스의 평화로 향하게 됩니다.
페리클레스가 죽자 아테네 정치권은 상반된 두 세력으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귀족('아리스토이') 출신으로 지나치게 보수적인 니키아스였고, 다른 하나는 부유한 무두장이 출신으로 최종 승리까지 전쟁을 지속하자는 입장의 클레온이었습니다.
플라타이아가 스파르타에 함락되어 테베에 넘겨지자, 이에 자극받은 미틸레네의 과두파들은 기원전 428년 레스보스 섬 도시들의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메튐나를 제외한 섬의 여러 도시들이 호응했지만, 메튐나가 아테네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아테네는 섬을 봉쇄했고, 기원전 427년 마침내 진압에 성공했습니다.
이때 아테네 민회의 첫 결정은 악명이 높습니다. 클레온의 주도 아래 열린 회의에서 미틸레네의 성인 남성 전원 처형과 여성·아이들의 노예화가 결의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이후 용서받았지만 토지를 빼앗겼고, 그 땅은 아테네의 클레루코이(거주 식민자)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이어 코르키라 내전(기원전 427년)이 벌어지고, 아테네는 필로스를 점령합니다. 니키아스는 키티라와 키누리아의 티레아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지만, 아테네군은 델리온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으며 패배했습니다.
이 무렵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용장 브라시다스라는 강적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아칸토스, 스타기라, 암피폴리스를 차례로 점령했고, 구원에 나선 클레온과 함께 기원전 422년 여름 암피폴리스 성벽 앞에서 전사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 이후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았고, 기원전 421년 니키아스의 평화가 체결되면서 10년에 걸친 전쟁에 막이 내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