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메리카 대륙의 종교재판: 성직소의 설립과 활동의 실상

아메리카 대륙에서 성직소(Holy Office)의 활동은 본국의 모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그 배경에는 무어인, 유대인, 이단자들의 신대륙행이 금지되었던 점, 재판소 설치가 늦어진 점, 그리고 두 부왕령에서의 존재감이 약했던 점이 작용했다.

종교재판소의 설립 과정

1568년 종교재판소 설치가 공식적으로 결정되었지만, 초기에는 리마(1570년)와 멕시코(1571년) 두 곳에만 설립되었다. 물론 이 기관 자체는 16세기 초부터 이미 아메리카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후 1610년에는 세 번째 재판소가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에 설치되었으며, 이는 해당 도시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성직자 통제와 주교의 심판권 부여

일부 사제와 수도사들이 원주민 여성을 상대하는 문제를 비롯해 정통 신앙에서 크게 벗어난 행위를 보이면서, 내부 통제 장치가 마련되었다. 성직자에 대한 감독은 종교재판소의 몫이었으며, 이러한 성직자들의 타락은 후원권(Patronato)을 행사하던 고위 식민 당국의 고발로 이어졌다. 그 결과 1517년부터 모든 아메리카 주교에게 종교재판 권한이 부여되었고, 1519년에는 일부 아메리카 영토에 종교재판 위원이 임명되었다.

반도보다 훨씬 온화했던 처벌 수준

아메리카 종교재판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할 때, 그 활동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루어진 것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판결 건수와 강도 모두 스페인 본토에서 시행된 것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대표적으로 리마의 경우, 성직소가 존속한 250여 년 동안 내려진 사형 선고는 단 30건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점은 원주민 문제가 종교재판소의 직접적인 관할 범위에 속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는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원주민 사건을 다루는 것이 이론상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재판소가 원주민 관련 일부 사건을 검토한 사례는 존재했다.

종교재판의 핵심 사명과 브라질의 예외

성직소의 근본적인 사명은 유럽인들 사이에서 가톨릭 신앙의 오염을 막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유태교로 회귀한 개종자(Judaizers),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마녀 혐의를 받는 이들을 탄압해야 했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독자적인 종교재판소가 한 번도 운영된 적이 없었으며, 극히 특수한 상황에서만 리스본에 재판소 파견을 요청하는 선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