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우루과이 독립: 아르티가스와 동방인의 투쟁

우루과이 독립의 시작

라플라타 강 하구를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우루과이 강 동안(東岸, 바이다 오리엔탈)'이라 불린 이 지역은 수도 몬테비데오를 중심으로, 파라과이와 마찬가지로 라플라타 연합주에 가담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의 봉기

1811년 2월 28일, 가우초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이들을 이끈 것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 재정복 전투에 참전한 경력까지 있는 개방적인 지주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였습니다. 그는 1810년 아르헨티나 혁명 정부(운타)를 지지하며 바이다 오리엔탈로 건너가 봉기를 준비했고, 론데아우 장군과 함께 몬테비데오를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부왕 엘리오가 포르투갈에 원군을 요청하면서 포르투갈군이 국경을 넘어 침공했습니다. 이에 아르티가스는 우루과이 민중 전체를 이끌고 이른바 '동방인의 대이동(엑소두스)'을 감행했습니다.

통일파와의 충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통일주의는 곧 아르티가스가 내세운 강한 연방주의와 충돌했고, 그의 연방주의 노선은 1813년 회의에서 거부당했습니다.

아르티가스는 가우초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통일파와 맞서 싸웠습니다. 1814년에는 알베아르 장군에게 몬테비데오를 빼앗겼으나, 이듬해 도시를 되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침공과 시스플라티나 주

1816년, 브라질에서 온 포르투갈군이 우루과이를 합병할 목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아르티가스는 끝까지 게릴라전을 벌였지만 1820년 1월 타쿠아렘보에서 패배하면서 저항은 좌절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우루과이를 자치 체제로 브라질에 편입시키고 '시스플라티나 주'(1821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33인의 맹세와 독립 승인

그러나 1825년, 우루과이 의용군이 아르헨티나 영토에서 진입하여 '33인의 동방인 맹세'를 통해 독립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이들은 브라질 세력을 몰아내고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결국 영국이 중재한 리우데자네이루 선언에 따라 1828년 7월 27일 우루과이의 독립이 공식 인정되었으며, 2년 후인 1830년 헌법이 선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