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년 오스트리아가, 1806년 프로이센이 차례로 무릎 꿇자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이익에 맞춰 신성로마제국(독일민족의 제국)을 재편하는 구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수많은 독일 소국들은 서로 통합되거나 해체되었고, 프랑스의 후견 아래 대국들과 함께 '라인 연방'이라 불리는 새로운 국가 연합을 이루었다. 연방에 가담한 각 국가는 자국의 인구와 경제 상황에 비례해 일정 규모의 군사 파병 의무를 지게 되었다.
작센 소공국들의 오랜 군사 전통
라인 연방에는 작센바이마르, 작센고타, 작센마이닝겐, 작센코부르크,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 등 이른바 '작센 공국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소국은 프랑스 황제에 대한 의무에 따라 프랑스의 전쟁 수행에 군사적으로 기여해야 했다.
이들 공국은 그 작은 규모와는 정반대로 깊은 전쟁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큰 작센고타 공국의 인구가 고작 18만 명에 불과했음에도, 그 역사는 30년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땅은 언제나 우수한 병사들을 배출해 왔고, 오스트리아군과 프로이센군이 탐내는 징집 대상이기도 했다.
1792년부터 1806년까지 이 소공국들은 프랑스와 싸웠으며, 당시 그들의 소규모 군대는 프로이센식 조직 체계를 따랐다. 그러나 나폴레옹 시대에 들어서며 모든 소공국의 병력이 하나로 통합되어 라인 연방 제4보병연대를 이루었고, 조직 또한 프랑스식으로 재편되었다.
프랑스식 편성, 총 병력 2,368명
연대의 골격은 1807년부터 갖추어지기 시작했지만, 조직이 완비된 것은 1809년 새로운 프랑스-오스트리아 전쟁이 선포되면서였다. 제4연대는 열병(line) 대대 2개와 경보병 대대 1개, 총 3개 보병 대대를 두었다.
열병 대대 하나는 6개 중대로 구성되었다. 머스킷 총병 4개 중대, 산병(voltigeur) 1개 중대, 유탄병(grenadier) 1개 중대가 그것이다. 경보병 대대는 정예 엽병(Jäger) 1개 중대와 일반 엽병 5개 중대로 편성되었다.
1809년 기준 제4연대의 총 병력은 2,368명이었다. 열병 대대 2개는 작센고타·작센마이닝겐·작센코부르크 출신으로 채워졌고, 경보병 대대는 작센바이마르와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 출신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제각각이던 군복과 무장
마이닝겐과 고타 출신 병사들은 프랑스식과 프로이센식이 뒤섞인 군복을 입었다. 파란색 상의에 흰색 혹은 연청색 장식을 두른 것이 특징이었다. 열병 대대 2개의 산병 중대는 작센코부르크 공국 출신으로 채워졌는데, 이들은 진한 녹색 군복을 착용했다.
경보병 대대 병사들은 진록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입었다. 병사들은 대체로 샤코(shako) 모자를 썼지만, 일부는 재고로 남아 있던 이각모(bicorne)를 쓰기도 했다. 덕분에 연대는 다채로운 색채의 외양을 보여주었다.
무장 역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병사들은 프랑스제 또는 프로이센제 머스킷을 들었으나, 정예 엽병 중대만은 프로이센제 강선 소총(rifle)을 장비했다. 열보병과 열병 대대의 산병들은 총검과 도(刀)를 함께 지녔고, 엽병들은 총검만을 휴대했다.
정예 엽병들은 소총에 장착할 수 있는 세이버형 총검을 사용했다. 이는 칼로도, 총검으로도 쓸 수 있는 만능 무기였다. 열병 대대 산병 중대의 부사관들 역시 강선 총열을 가진 소총을 지녔다.
혼성 부대답지 않은 결속력
제4연대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른 독일 소국 혼성 연대들과 차별화한 것은, 소속 병사들이 공유하는 정치적·문화적, 무엇보다 군사적 전통이었다.
프랑스의 후견 아래 놓여 있었음에도, 1807년 처음 실전에 투입된 때부터 이들은 효율적으로 싸웠다. 게다가 지휘관 역시 외부에서 파견된 사람이 아니라 자체 장교, 즉 작센바이마르 공국 출신의 유능한 장교 폰 에글로프슈타인(von Egloffstein) 대령이 맡았다.
1809년 티롤, 옛 동맹과의 전쟁
1809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제4연대는 옛 동맹국과 싸우기 위해 전선에 파견되었다. 라인 연방 제5, 제6연대 및 바이에른군과 함께 티롤 지방으로 향한 것이다. 임무는 그곳의 반란 주민들과 소규모 오스트리아 부대를 진압하는 것이었다.
제4연대는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경보병 대대가 두드러졌는데, 이는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벌어지는 소부대 규모의 전투라는 성격도 한몫했다. 그 성과는 교만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조차 감탄하게 만들며 존경을 받았다. 연대는 1813년까지 프랑스 편에서 계속 싸웠다.
러시아의 설원에서 소멸되다
제4연대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해체되었다. 그러나 그 잔존 병력 일부는 1813년 재편성되어 이번에는 반(反)프랑스 연합군에 가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옛 주군과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