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라노키톤스(검은셔츠단)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민병대로, 무솔리니의 전쟁 어디에나 모습을 드러냈다. 1935~36년 에티오피아 침공에서 처음 전투를 치렀고, 이후 1939년까지 프랑코 진영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아프리카 전역에도 투입되었으며, 훗날에는 소련 전선까지 진출했다.
이탈리아의 그리스 침공에도 수많은 검은셔츠 부대가 동원되었다. 북부 대륙 전선에는 48개 검은셔츠 대대가 20개 '군단(레지오네)'으로 편성되어 투입되었다. 각 군단은 2개 대대로 구성된 연대급 부대로, 이탈리아 보병사단의 제3보병연대 자리에 통합되었다. 이 밖에 3개 대대 규모의 독립집단 1개와 독립대대 5개가 별도로 배치되었다.
군단이 배속된 사단은 다음과 같다. 루피 디 토스카나, 아쿠이, 쿠네오, 레냐노, 칼리아리, 스포르체스카, 모데나, 브렌네로, 베네치아, 아레초, 페라라, 카치아토리 델레 알피, 파르마, 포를리, 풀리에, 피네롤로, 시에나, 바리, 타로, 피에몬테.
결과는 이탈리아군에게 비참한 것이었다. 위 대대 가운데 무려 27개 대대가 막대한 손실로 궤멸되거나 해산되었다! 이들의 전장 성과는 기대 이하였거나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원인은 훈련 부족 — 당시 이탈리아군 전체가 앓던 고질병 — 과 열악한 장비에 있었다.
그리스에서 통상 알려져 있던 것과 달리, 멜라노키톤스는 결코 엘리트 부대가 아니었다. 파시스트 선전이 체제의 광신적인 전사들로 포장해 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초기 사기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은 이탈리아 국내에서 대체로 큰 호응을 얻었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사기는 스페인에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리스군과 맞선 북부 산악 전선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멜라노키톤스는 이후 그리스에서 점령군으로서 계속 활동했다.
조직
보병사단에 배속된 검은셔츠 '군단'의 정원은 1,434명(장교 52명, 부사관 76명, 병사 1,306명)이었다. 대대의 정원은 521명(장교 18명, 부사관 29명, 병사 474명)이었다.
군단은 2개 대대 — 파시스트들이 로마의 위대함을 되살리려는 의도로 '코호르테'라 불렀다 — 외에 정원 104명의 본부중대와 중기관총 12정을 운용하는 정원 214명의 기관총중대를 두었다.
분대 화력을 보면, 각 대대는 기관총 24정과 45mm 브릭시아 박격포 9문을 보유했다. 군단 전체로는 중기관총 12정과 경기관총 48정, 박격포 18문을 갖추었으나, 결국 일반 이탈리아 보병부대에 비해 화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또한 각 군단은 이탈리아 본토에 강력한 '코호르테' 하나를 남겨두었다. 주목할 점은 멜라노키톤스가 자체 훈련소를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육군이 제공하던 후방 지원 서비스마저 배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장
검은셔츠 장교와 분대화기 사수는 베레타 M34 9mm 권총을 휴대했다. 소총수는 6.5mm 만리허-카르카노 소총과 카빈총을 사용했다. 기관총은 20발 탄창 급탄식 6.5mm 브레다 M30이었다. 중기관총으로는 수랭식 6.5mm 피아트-레벨리 M1914, 6.5mm 피아트-레벨리 M1935, 그리고 8mm 브레다 M1937이 배치되었다. 또한 앞서 언급한 45mm 브릭시아 박격포를 운용할 수 있었지만, 81mm 박격포는 보유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