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장미 전쟁: 잉글랜드 내전을 지배한 보병들의 이야기

장미 전쟁: 잉글랜드 내전을 지배한 보병들의 이야기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수십 년간 잉글랜드를 뒤흔들었다. 양측 군대는 주로 보병으로 구성되었으며, 보병은 이 갈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장미 전쟁이란 무엇인가

장미 전쟁(War of the Roses)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길고 파괴적인 내전 중 하나였다. 1455년에 시작되어 중간중간 휴전기를 거치면서 1487년까지 약 30여 년간 지속되었다. 이 전쟁에서 왕좌를 놓고 경쟁한 세력은 바로 랭커스터 공작 가문과 요크 공작 가문이었다.

두 가문의 문장, 즉 요크 가문의 흰 장미와 랭커스터 가문의 붉은 장미에서 따온 '장미 전쟁'이라는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보병 중심의 잉글랜드 군대 전통

흥미로운 점은 당시 유럽 다른 나라 군대들이 중기병에 의존한 것과 달리, 중세 잉글랜드 군대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보병을 전력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잉글랜드군은 백년전쟁 당시 보병, 특히 유명한 롱보우(longbow)로 무장한 궁수들의 우위에 힘입어 당시 유럽 최강의 군대였던 프랑스군과 거의 대등하게 맞설 수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장미 전쟁 기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양 진영의 군대 구성

장미 전쟁에서 맞선 두 진영의 군대는 사실상 구조가 거의 같았고, 차이는 미미했다. 각 군대는 중기병과 기사, 그리고 다수의 보병으로 이루어졌다. 보병은 다시 여러 범주로 세분되었다.

1. 하마 기사(보병 기사)

첫 번째 범주는 귀족 출신의 보병 기사들이었다. 잉글랜드 기사들은 백년전쟁에서 확립된 전통에 따라 말에서 내려 도보로 싸우는 것을 선호했으며, 장미 전쟁에서도 상당 부분 마찬가지 방식으로 참전해 보병 대열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이들은 전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완전히 덮는 중무장을 갖추었고, 백병전용 무기로 무장했다. 주무기는 긴 양날검이었지만, 낫(longsickle), 랜스, 전투도끼, 창 등 다양한 무기를 함께 사용했다. 여기에 상대의 흉갑을 으깨는 데 최적화된 '랑 드 뵈프(langue de boeuf)'나 '플랑송 아 피코(plançon à picot)' 같은 독특한 무기도 등장했다. 보병 기사들은 일종의 보병 부대 지휘관 역할도 겸했다.

2. 궁수와 창병

가장 흔한 보병 유형은 궁수와 창병이었다. 궁수들은 치명적인 롱보우를 장비했으며, 검과 투구, 경갑주를 갖추고 경우에 따라 작은 원형 방패인 버클러(buckler)도 휴대했다. 활 사용에 능숙한 지역 농민들로 이루어진 궁수 부대도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짧은 검이나 핸드건 정도 외에는 별다른 무장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창병들은 창이나 낫 형태의 장병기를 들고 비교적 촘촘한 대형으로, 궁수들 근처에 배치되었다. 적진이 아군의 화살 세례로 이미 지쳐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집단 백병전을 통해 적 전열을 붕괴시키고 그 전과를 확대하는 임무를 맡았다.

3. 대륙 출신 용병: 파이크병과 화승총병

이 전쟁에 참전한 또 다른 두 유형의 보병은 주로 유럽 대륙에서 건너왔다. 하나는 밀집 대형으로 싸우는 긴 창(파이크) 용병들로, 대부분 플란데른, 부르고뉴, 독일 출신이었다. 다른 하나는 초기 총기류를 사용하는 아르케부스(arquebus) 소총병으로, 역시 플란데른, 프랑스, 독일 출신이 많았으며 산개 대형을 이루며 교전하는 '아크로볼리즘(acrobolism)' 방식으로 싸웠다. 이 두 병과는 특히 요크 가문 측에서 많이 활용되었다.

4. 웨일스인과 아일랜드인 보병

긴 창과 검, 때로는 작은 방패로 무장한 웨일스 보병과 웨일스 궁수들은 양측 모두에게 폭넓게 고용되었다. 랭커스터 가문은 대량의 아일랜드 보병을 고용하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은 표창(javelin), 방패, 핸드건을 들고 느슨한 대열로 싸웠고, 나머지는 고대 '프실로이(psiloi)' 경보병처럼 산개 교전 방식으로 동일한 무장을 사용해 싸웠다.

브르타뉴 반도 출신의 창병 용병들도 같은 방식으로 싸웠으며, 요크 가문을 위해 복무한 부르고뉴 출신의 '척탄병'들도 있었다. 소위 '페타디어(Petardier)'라 불린 이들은 주로 공성전에서 초기 폭발 장치를 운용하는 병과였다.

전투 방식: 2열 전투대형

당시의 보병들은 최소한 두 개의 전투 열로 나뉘어 싸웠다. 후방의 제2열은 제1열을 지원하며 첫 번째 열에서 벌어진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담당했다. 포격과 초기 총탄, 화살 교환 이후 양측 열은 서로 접근했고, 전투의 승패는 백병전에서 가려졌다. 물론 상대 전열이 이미 투사체와 화망에 의해 붕괴된 경우라면 백병전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