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최전선에서 깃발을 들고 지휘하던 원수, 프로이센의 슈베린

최전선에서 깃발을 들고 지휘하던 원수, 프로이센의 슈베린

유럽 전장을 누비던 젊은 시절

1684년 포메라니아 뢰비츠(Löwitz)에서 태어난 쿠르트 크리스토프 백작 폰 슈베린(Kurt Christoph von Schwerin)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 가문 출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무관의 길을 택한 그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 기간 동안 네덜란드군에 입대하며 군인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위대한 영국 장군 말버러 공작 존 처칠의 지휘 아래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과 맞선 동맹군의 대승인 셸렌베르크 전투와 블레님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1707년에는 모국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군대로 돌아가 중령 계급으로 라미예 전투와 참혹했던 말플라켓 전투에 참전했다. 이후에는 스웨덴 편에서 러시아와도 맞서며 북방 전선까지 누볐다. 1718년, 30대의 나이에 이미 중장으로 진급했다.

프로이센으로, 그리고 대왕의 스승으로

다음 해 그는 메클렌부르크로 침입한 하노버군을 상대로 발스뮐렌 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1720년 프로이센 군대에 합류한 그는 죽음이 닥칠 때까지 무려 37년간 프로이센을 위해 복무했다.

1722년 보병연대 지휘관이 된 그는 1730년, 엄격하기로 유명한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명에 따라 당시 왕세자였던 프리드리히(훗날의 프리드리히 대왕)를 심판한 군사법정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1733년에는 프로이센군을 이끌고 메클렌부르크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수완을 발휘했으며, 1734년 중장, 1739년 대장으로 차례로 승진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군사 기계로 성장한 프로이센 육군의 정예화에 핵심적 역할을 했고, 미래의 국왕 프리드리히에게 군사적 스승이자 멘토가 되어 주었다.

원수의 영광, 몰비츠의 기적

1740년 즉위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를 원수(Field Marshal)로 임명했다. 슈베린은 몰비츠 전투(1741)에서 인생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다. 프리드리히는 자군이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고 판단하고 실망한 채 전장을 떠났지만, 슈베린은 오직 보병만으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며 승기를 굳혔다.

제1차 실레시아 전쟁(1740~41)의 승리 이후 그는 새로 획득한 영토 실레시아의 일부를 행정 관리하기도 했다. 제2차 실레시아 전쟁(1744~45) 작전에서도 그의 공헌은 매우 컸다. 이후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은거하다가, 1756년 7년 전쟁이 발발하자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프리드리히 곁에서 프라하 전투에 참전했다.

깃발을 든 채 최후를 맞이하다

프로이센군의 공격이 좌절되자, 노장은 직접 몸소 움직였다. 그는 명예 대령으로 있던 제24보병연대의 선두에 말을 달려 나가, 손에 깃발을 들고 외쳤다.

"용감한 프로이센인들이여, 모두 나를 따르라!"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전진하던 그는, 바로 그 순간 오스트리아군의 포격에 맞아 전사했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태생적 군인에게 걸맞은, 영예로운 최후였다.

최전선에서 깃발을 들고 지휘하던 원수, 프로이센의 슈베린
슈베린 원수의 최후를 담은 역사적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