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히틀러를 위해 날았다… 잊혀진 '러시아 루프트바페'와 소련 조종사들의 최후

히틀러를 위해 날았다… 잊혀진  러시아 루프트바페 와 소련 조종사들의 최후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이후, 수천 명의 소련 국민들이 독일군에 복무했습니다. 이들 중 다수는 굶어 죽어가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보다는 적과 협력하는 길을 택한 포로들이었고, 일부는 확고한 반공주의자였으며, 또 일부는 단순한 기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소련 출신 병사들은 대개 독일 사단에 보조병('하이비', Hiwi)으로 배속되거나, 민족별(우크라이나인, 코사크 등) 또는 이념별(반공주의자, 민족주의자)로 자체 부대를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소련 포로들로 만든 부대 중 가장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가장 역설적인 부대가 있었으니, 바로 공군 조종사들이었습니다.

루프트바페의 날개가 된 소련인들

일찍이 1942년부터 소련인들은 루프트바페(독일 공군) 부대에서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벨라루스에서는 폴리카르포프 Po-2 복엽기로 무장한 중대가 편성되어 파르티잔(게릴라) 소탕 작전에까지 동원되었습니다.

1943년 10월, 발터 홀터스(Walter Hotlers) 중장은 소련 출신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을 규합해 '홀터스 분견대'를 창설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빅토르 말체프(Viktor Malchev) 대령(훗날 중장으로 진급)의 협조를 얻어 라트비아 다우가빌스에 제1 '동부 비행단(East Swarm)', 즉 러시아인 항공부대가 조직되었습니다.

각종 기종으로 무장한 부대

이 부대는 독일제 하인켈 He-50·He-46, 아라도 Ar 66, 고다 Go 145와 소련제 폴리카르포프 I-15·I-153·Po-2, 야코블레프 UT-2 등 다양한 항공기로 무장했으며, 주로 소련군을 상대로 한 야간 작전에 투입되어 1944년 7월까지 500회가 넘는 전투 출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대는 항공기 3대를 잃었고, 사고사를 포함해 총 9명의 조종사를 잃었습니다.

'러시아 해방군' 항공연대의 실체

이들 소련 조종사들은 모두 반공 조직인 '러시아 해방군(ROA)'에 가담해 있었습니다. ROA 항공사단(제1항공연대)은 병력 7,500명으로 말체프가 지휘를 맡았습니다. 연대(훗날 사단으로 개편)는 정찰 1개, 수송 1개, 근접 지원(훗날 야간 폭격) 1개, 폭격 1개, 훈련 1개, 군사 협력 1개, 전투기(Me-109 G) 1개 등 총 7개 비행중대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에 제9 대공연대, 통신 중계대, 공수대대까지 통합되었고, 대원들은 ROA 문장을 새긴 표준 독일 루프트바페 군복을 입었습니다.

배정된 항공기

부대에 배정된 항공기는 총 메서슈미트 Bf 109G-10 18대, 융커스 Ju 87D 슈투카 14대, 하인켈 He 111 폭격기 7대, 군사 협력기 피제 Fi 156 2대, U-2 5대, Bf 108 2대였습니다. 이 밖에 Hs 129와 Do 17이 운용되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1944년 3월부터는 소련인들이 자원 대공부대에도 배치되었는데, 이들 상당수는 이후 SS로 흡수되었습니다. 보조 업무에 동원된 소련인들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영웅에서 배신자로 — 에이스 비코프의 이야기

루프트바페에서 복무한 소련 조종사의 전형적인 예가 세묜 트로피모비치 비코프(Semyon Trofimovich Bykov)입니다. 1942년 7월 사고 이후 그는 군법회의에서 강제 노동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몇 달 뒤 처벌을 면하고 현역으로 복귀했습니다. 이후 1943년 8월까지 격추 17기를 기록한 에이스로 성장했고, 소련의 최고 영예인 '소련 영웅' 칭호마저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10일, 비코프는 독일 대공포화에 격추되어 의식 불명 상태로 기체에서 끌려 나왔습니다. 요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리고 1944년 초, 말체프가 그를 직접 찾아내 ROA 제1항공연대 가입을 설득했습니다. 비코프는 훗날 강압에 못 이겨 가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독일군 야간 폭격 중대를 이끌며 싸우는 한편, 친우 안틸렙스키(Antilevsky)와 함께 포로가 된 소련 조종사들을 모집하는 작업에도 가담했습니다. 두 사람은 1945년 4월 오데르 전선에서 옛 동포들과 맞서 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쟁이 끝난 후, 기다린 것은 단두대

비코프는 종전 무렵 미군에게 포획되어 소련 측에 인도되었습니다. 8월 24일 그는 반역죄로 재판받아 사형을 선고받았고, 특사 신청이 기각된 뒤 1946년 11월 4일 처형되었습니다. 안틸렙스키와 말체프, 그리고 독일을 위해 싸웠던 대다수의 소련 조종사와 기술자들도 비슷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히틀러를 위해 날았다… 잊혀진  러시아 루프트바페 와 소련 조종사들의 최후

말체프(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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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틸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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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코프.

히틀러를 위해 날았다… 잊혀진  러시아 루프트바페 와 소련 조종사들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