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호 속에 시작된 전쟁,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제1차 세계대전은 교전국 거의 모든 수도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막을 올렸다. 파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독일에게 빼앗긴 알자스·로렌 지방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의 현실과 마주한 병사들에게 환호와 축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제31보병연대(프랑스) 소속 상등병 장 갈티에-보시에는 당시를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동료들이 전쟁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애국적인 문학 작품에서 읽은 것뿐이었다."
1914년 8월 24일, 최전선에 선 보병들
1914년 8월 24일, 이 연대는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아침 햇살이 푸른 군복과 진홍색 바지 차림의 프랑스 보병들의 총검을 반짝이며 비췄다. 그날의 전투를 그는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눈앞에는 완전히 텅 빈 산비탈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도, 장애물도 없이… 총알이 귓가를 스쳤고 포탄이 터졌으며, 무거운 유산탄은 흙기둥을 하늘 높이 치솟았다… 폭음에 귀가 먹어 명령 소리를 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는 최면에 걸린 듯 먼지와 소음 속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걸었다고 회고했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구호는 단 하나, '전진, 전진'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한 명의 장교를 따라 무리지어 앞으로 나아갔다. 곧장 전진했고,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물통까지, 온몸에 짊어진 짐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병사들은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렸다. 어떤 이들은 비틀거려 넘어졌고, 몸을 일으키려던 다른 이들은 머리에 총탄을 맞았다.
단 한 발도 쏘지 못한 채
"총알은 낮게 깔리듯 폭풍처럼 몰아쳤다. 적의 기관총 탄환이 우리 사이를 가로질렀고, 내 옆에 있던 병사는 외침과 함께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뒀다… 우리를 두들겨 패고 있는 적 기관총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단 한 발도 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열두 명 정도뿐이었다."
"나는 흙더미 두 개 사이에 웅크렸다. 기관총 소리가 들린다. 총알이 미친 듯이 휘파람을 불며 날아온다. 들리는 총알 하나하나가 모두 내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왜 아무도 명령하지 않는가? 우리 포병은 무슨 짓을 하는가?"
후퇴 명령, 그리고 또 다른 시련
"갑자기 누군가 외쳤다! 후퇴… 총알이 사방을 쓸고 있었다. 나무가 줄지어 선 도로까지는 20m. 길가의 도랑에 몸을 숨기면 안전할 터였지만, 그곳에 닿으려면 집중적으로 화망이 쏟아지는 지대를 통과해야 했다. 그야말로 고비의 순간이었다."
"한 병사가 일어나 몇 걸음 걷다가 엎드린 채 쓰러졌다. 또 다른 병사가 달렸지만 반도 못 와서 배를 부여잡고 고통에 절규하며 주저앉았다… 세 번째 병사가 나섰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서서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채 뒤돌아섰다. 그는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쓰러졌다."
"나는 마지막이었다. 필사적으로 달려 도랑 밑바닥에 몸을 던져 겨우 안전을 확보했다… 우리의 손실은 너무나 컸다. 연대장인 중령을 비롯해 장교 4분의 3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모두가 넋을 잃은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았다. 연대는 애도에 잠겼다." 프랑스 상등병의 증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첫 전투에서 치른 프랑스군의 처참한 대가
작전 초기 프랑스군이 입은 손실은 처참할 정도였다. 1914년에 싸운 병사 중 25%가 전사, 부상, 행방불명 등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실례로 제71보병연대는 1914년 11월까지 병력의 35% 이상을 잃었고, 제12보병연대의 손실률은 50%를 넘어섰다. 승리를 확신하며 출정했던 병사들은 개전 몇 달 만에 전쟁의 잔혹한 본질을 몸소 확인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