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신참 기관총 사수 '애네도트'의 기적…일본 에이스를 격추한 치명적 공중 결투

신참 기관총 사수  애네도트 의 기적…일본 에이스를 격추한 치명적 공중 결투

전쟁과 과신은 함께 가지 않는다

1942년 5월 22일, 일본군은 인도 국경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장악한 상태였고, 낙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전쟁과 과신은 결코 함께 가지 않는 법. 일본군 에이스 조종사들은 이 교훈을 단 한 대의 적기로부터, 이론상으로는 아주 쉬운 표적이었던 그 기체로부터 가장 뼈아프게 배우게 된다.

이날 영국 왕립공군(RAF) 제60폭격비행대대 소속 경폭격기 브리스톨 블렌하임은 버마의 일본군 비행장 공습을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는 중이었다. 워런트 오피서 해거드가 조종하고, 동료들이 '애네도트(Anecdote, 그리스어로 '농담'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붙인 '신참' 기관총 사수 매클래키, 그리고 항법사 겸 폭격수 하윗이 탑승한 이 기체는 벵골만 상공을 날고 있었다.

오스카 전투기들의 추격

블렌하임은 등쪽 포탑에 기관총 2정을 장착한 것이 고작이었다. 더 빠르고 기동성이 뛰어난 일본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생존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이 홀로 비행하는 영국기는 일본 육군 항공대 제64비행전대의 항공기들에게 발각되고 만다.

일본군 부대는 연합군이 '오스카'로 불린 초고기동 전투기 키-43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기관총은 2정에 불과했지만, 속도와 기동성, 무엇보다 숫자에서 영국 폭격기를 완벽히 압도하고 있었다. 10대 격추 기록을 지닌 에이스, 요시토 야스다 병장이 영국기를 추격한 최초의 조종사였다.

곧 일본군 에이스는 느리게 비행하는 블렌하임에 접근해, 쉬운 승리를 확신하며 급강하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애네도트'를 얕본 것이었다. 전투에서 기관총을 사용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음에도, 매클래키는 급강하하던 야스다의 오스카를 격추했다. 피탄당한 일본군 조종사는 기지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공격을 이어받은 것은 오타니였다. 그러나 그 역시 '애네도트'의 손아귀에 걸렸다. 빅커스 K 기관총이 '따르릉' 울부짖으며, 일본군 대위를 크게 손상된 상태로 기지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곧이어 키-43 세 대가 더 나타났다. 블렌하임의 승무원들은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고 여겼다. 상대 편대의 지휘관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그들은 더욱 절망했을 것이다.

에이스 가토 다케오의 최후

세 대의 오스카를 이끌던 이는 최소 18대의 격추 기록을 보유한 에이스, 가토 다케오 중좌였다. 그러나 그 역시 적을 얕보는 실수를 저질렀다. 블렌하임을 격추하기 위해 급강하하던 중, 그의 기체는 매클래키의 기관총에 크게 피탄되어 불길에 휩싸였다. 가토 중좌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바다 위를 날고 있어 기지로 돌아갈 희망이 없었고, 기체에서 탈출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바다 쪽으로 기수를 돌렸고, 그의 비행기는 화염덩어리가 되어 추락해 바다에 충돌했다.

그와 함께하던 나머지 두 명의 일본군 조종사들은 더 이상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참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지로 귀환했을 뿐이다. 매클래키가 자신이 누구를 격추했는지 알게 된 것은 그해 8월 22일, 현지 왕립공군 사령부의 통보를 통해서였다. 그는 동시에 스티븐슨 해군 소장으로부터 따뜻한 축하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