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765년 인지법: 영국 의회는 식민지 주민들이 모든 종이 제품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도록 요구하는 인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식민지의 동의 없이 부과된 직접세는 '대표 없이 과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항의와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 의회에 대표자가 없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 보스턴 대학살(1770): 불안이 커지자 보스턴에 주둔한 영국군은 식민지 주민들과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사건은 영국군이 식민지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5명이 사망한 보스턴 대학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영국 통치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반영국 정서를 더욱 심화시켰다.
3. 1773년 차법: 차법(Tea Act)은 식민지에서 차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국 동인도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식민지 주민들은 이를 자신들의 동의 없이 과세를 부과하려는 또 다른 시도로 보았고, 이 법의 독점 측면에도 반대했습니다. 모호크 인디언으로 위장한 식민지 주민들이 수백 개의 차 상자를 보스턴 항구에 버린 보스턴 티 파티는 차법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이자 영국 정책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4. 1774년의 강압적 행위(용납할 수 없는 행위): 보스턴 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영국 의회는 식민지 주민들이 징벌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강압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러한 법률에는 보스턴 항만법, 매사추세츠 정부법, 쿼터링법 등이 포함됩니다. 이 행위는 긴장을 고조시키고 영국 권위에 대한 식민지 반대를 강화했습니다.
5. 제1차 대륙회의 결성(1774년): 미국의 12개 식민지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영국의 정책을 논의하고 집단 행동을 모색했습니다. 제1차 대륙 회의는 영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설명하고 식민지 주민들의 권리와 요구를 주장하는 권리 및 불만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식민지의 통일과 영국 통치에 대한 저항에 있어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주요 사건은 영국과 미국 식민지 간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더 큰 자치권에 대한 요구를 촉발했으며 결국 미국 독립 전쟁으로 정점에 달했습니다. 식민지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대표성을 인정하고 영국의 억압적인 정책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하여 독립을 위한 투쟁과 미합중국의 탄생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