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테수마의 환대
1519년 11월 8일, 코르테스는 아즈텍 황제 모테수마의 우호적인 환대와 초청을 받아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했습니다.
모테수마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숙소와 선물까지 제공했지만, 이러한 환대는 훗날 침략자들에 의해 오히려 나약함의 신호로 오해받고 말았습니다.
스페인군과의 정면 대결
스페인군의 진짜 의도를 깨달은 아즈텍은 침략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일련의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1520년 6월 30일, '노체 트리스테(비통의 밤)'라고 불리는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도시에서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아즈텍 정복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잔존 병력을 재정비하며 주변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하나씩 강화해 나갔습니다.
원주민 세력과의 동맹 구축
군사력을 보강하는 동시에, 코르테스는 아즈텍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여러 원주민 집단과 동맹을 맺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외교적 협상과 '아즈텍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약속을 앞세워, 코르테스는 틀락스칼란족과 텍스코코족을 비롯한 주변 원주민 국가들의 지지를 성공적으로 확보했습니다.
테노치티틀란 공성전
1521년 5월 26일,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에 대한 전면 공성전을 개시했습니다.
스페인군과 동맹군은 도시를 완전히 포위해 보급선을 차단했고, 쉴 새 없는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공성전은 약 90일간 지속되었으며, 이 기간 아즈텍 사람들은 격렬한 전투는 물론 극심한 기근과 질병에까지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즈텍 제국의 멸망
모테수마는 아즈텍인들에게 여전히 적법한 통치자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부 기록은 자기 백성의 손에 죽었다고 전하고, 다른 기록은 스페인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주장합니다.
1521년 8월 13일 최종 결전에서 스페인 정복자들은 우월한 무기와 화포, 그리고 원주민 동맹군의 지원을 앞세워 테노치티틀란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스페인의 승리를 뒷받침한 핵심 요인
1. 군사 기술의 압도적 우위
스페인은 총과 대포를 포함한 당대 최신 군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아즈텍군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2. 분할 통치 전략
코르테스는 여러 원주민 집단 사이에 존재하던 갈등과 긴장을 교묘히 활용해 동맹을 형성하고, 아즈텍에 맞서는 전투에 그들의 힘을 끌어들였습니다.
3. 전염병의 창궐
천연두, 홍역, 독감 등 유럽에서 건너온 질병은 원주민 인구를 급격히 감소시켰습니다. 아즈텍 수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이는 저항 능력을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정복 이후, 그리고 그 유산
왕실을 대신해 세운 공으로 코르테스는 누에바에스파냐(신스페인)의 총독 겸 대장군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행보는 스페인의 멕시코 지배의 시작을 알렸을 뿐 아니라, 식민지 시대 라틴 아메리카의 운명을 결정짓는 깊은 변혁과 문화 교류의 서막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