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고대 그리스 코린트의 라이벌은 누구였을까? 스파르타와 아테네

고대 그리스의 번영한 도시국가 코린트는 '라이벌'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특히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서 코린트와 끊임없이 얽히며 그 운명을 좌우했던 상대였습니다.

스파르타와의 대립

코린트와 스파르타는 같은 펠로폰네소스 동맹 소속이었지만 항상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상 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코린트와 달리, 스파르타는 군사적 정복과 육상 패권에 집중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노선의 차이는 양 도시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 시기입니다. 이 전쟁은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의 대결이었으며, 코린트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일원으로 아테네 진영과 맞섰습니다. 실제로 코린트와 아테네가 코르키라 섬(오늘날 코르푸)을 둘러싸고 벌인 분쟁은 전쟁의 도화선 중 하나였습니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코린트의 입장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파르타가 전후 그리스의 패권을 독점하려 하자 코린트는 반발했고, 아테네와 손을 잡고 스파르타에 맞서는 코린토스 전쟁(기원전 395~387년)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아테네와의 경쟁

아테네 또한 코린트의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두 도시의 경쟁은 경제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코린트가 지협을 장악해 동서 무역의 요충지로 번영한 상업 도시였다면, 아테네는 학문과 문화, 그리고 에게해 해상 세력의 중심지였습니다. 코린트가 현실적인 상업 이익을 중시했다면, 아테네는 미래지향적 비전과 문화적 영향력에 더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양 도시의 대립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59~446년) 때였습니다.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이 충돌한 이 전쟁에서 코린트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측에 서서 아테네와 그 동맹 도시들과 싸웠습니다. 전쟁은 휴전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양 도시의 경쟁 구도는 그대로 남았고 결국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즉 앞서 말한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으로 이어졌습니다.

길고 치열했던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코린트 역시 막대한 인명과 재정 피해를 입었고 전쟁 이전의 국력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몰락과 로마로의 귀속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코린트는 그리스의 주요 강국 반열에서 점차 밀려났습니다. 기원전 146년에는 로마군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재건되어 로마 제국 아카이아 속주의 수도로 거듭났습니다.

이처럼 코린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라는 두 강대한 라이벌과의 경쟁 속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도시였습니다. 무역으로 눈부신 번영을 이루었지만,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한복판에서 늘 시험대에 올랐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