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엄밀히 따지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시인들의 코너(Poets' Corner)'에 묻혔습니다.
물론 이것은 반쯤 장난스러운 구분입니다. 시인들의 코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남측 트랜셉트의 일부이기 때문에, 결국 초서 역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시인들의 코너'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 자체가 바로 초서 덕분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초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제프리 초서(약 1343~1400)는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의 저자로, 중세 영어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방언이 난립하던 시대에 런던 방언을 기반으로 한 영어로 걸작을 썼고, 이후 표준 영어 문학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을까?
흥미롭게도 초서가 사원에 안장된 것은 위대한 시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는 왕실 공사국 서기관(Clerk of the King's Works)으로 재직하며 웨스트민스터 궁전 등 왕실 건축물을 관리했고, 생전에 사원 인근에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왕실과 가까운 관계였던 그에게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장은 일종의 특별한 예우였던 셈입니다.
1400년 10월 25일 세상을 떠난 초서는 사원 남측 트랜셉트에 안치되었으며, 이곳은 원래 성 베네딕토를 기리는 예배당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시인들의 코너'의 탄생
초서가 묻힌 지 약 150년 후인 1556년, 그의 유해는 현재의 대리석 무덤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1599년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가 초서의 무덤 근처에 안장되면서, 위대한 문인들을 이곳에 모시는 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시인들의 코너에는 찰스 디킨스, 러디어드 키플링, 토머스 하디 등 수많은 문학 거장들이 잠들어 있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을 기리는 기념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전통의 출발점에는 바로 제프리 초서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제프리 초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확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의 시인들의 코너에 묻혔습니다. 다만 그의 안장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 세계적인 문인들의 안식처로 불리는 '시인들의 코너'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초서는 이름 그대로 이곳의 첫 번째 주인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