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6월 3일, 이탈리아 남부의 고대 그리스 도시 포시도니아(로마인들은 파에스툼이라 불렀던)에서 약 1.5km 떨어진 '템파 델 프레테(Tempa del Prete)' 지역. 고고학자 마리오 나폴리(Mario Napoli)는 기원전 6~5세기 소규모 네크로폴리스(묘지군)를 발굴하던 중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기원전 480~470년경으로 추정되는 작은 석실분이었습니다. 다섯 개의 커다란 석회암 판이 벽 네 면과 천장을 이루고, 바닥은 자연 기반암을 깎아 만들었습니다. 다섯 개의 석판을 회반죽으로 정교하게 맞춰 길이 2.15m, 폭 1m, 높이 80cm의 좁은 무덤방이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보물은 석판의 안쪽 면에서 드러났습니다. 내부가 프레스코화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면의 벽에는 심포지온(symphosion) 장면, 즉 그리스는 물론 페니키아·에트루리아 등 지중해 여러 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통적인 남성 연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는 고대 그리스 미술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기둥에서 몸을 날려 물, 강 혹은 바다로 뛰어드는 홀로 된 인물이 구불구불하고 물결치는 흐름 속에 표현된 것입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 '도약'이 문자 그대로의 수영이 아니라 죽음에서 내세로의 전환을 상징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그가 뛰어내리는 곳은 알려진 세계의 끝을 알리고 인간 지식의 한계를 상징하는 헤라클레스의 신화적 기둥을 연상시킵니다. 발견자 마리오 나폴리는 “판 위에 아주 가까이 매달린 듯한 역동적인 자세는 마치 비행하는 듯한 몰입감을 주며, 지식의 세계로의 전환을 상징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바로 이 천장 프레스코 때문에 이 무덤은 이탈리아어로 '톰바 델 투파토레(Tomba del Tuffatore)', 즉 '수영선수(다이버)의 무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프레스코화는 비유적(인물) 표현을 담고 있는 고전 고대 그리스 회화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프레스코 벽화 사례입니다.

북쪽과 남쪽 벽에는 심포지온에 참석한 다섯 명의 남자가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화환이나 머리장식을 쓰고 술잔을 기울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잔에 담긴 술을 정해진 목표에 던지는 그리스식 게임 '코타보스(cótabo)'를 즐기고 있으며, 또 다른 이는 손가락 사이에 달걀처럼 보이는 흰 물체를 들고 있는데, 마리오 나폴리에 따르면 이는 아마도 오르페우스-피타고라스 계열 숭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쪽 벽에는 연회에 들어서거나 자리를 뜨는 것으로 보이는 세 인물—지팡이를 짚은 노인, 히마티온(망토)을 두른 청년, 피리를 부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동쪽 벽에는 크레이터와 같은 큰 용기에서 포도주를 떠내는 데 쓰이는 주전자 '오이노코에(oenochoe)'를 든 홀로 된 하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덤 내부에서는 화장 후 봉안된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의 유해와 함께, 흑회식(검은 인물) 문양으로 장식된 아티카산 레퀴토스(기름병), 설화석고 연고 항아리 두 개, 그리고 거북등껍질 조각 일부가 출토되었습니다. 거북등껍질은 아마도 리라(거문고)의 공명판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묻힌 이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림에서 값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이집트 블루 색소가 검출된 점으로 미루어 상당한 부유층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구자들은 이 무덤의 주인이 그리스인이었는지, 아니면 그리스인 도래 이전의 토착 부족이었는지를 놓고 지금도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토착 부족설을 옹호하는 쪽은 이 무덤 프레스코화가 지닌 예외성에 주목합니다. 비슷한 비유적 장식을 지닌 다른 그리스 무덤은 발견된 적이 없고, 애초에 무덤에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그리스의 관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그리스인설을 지지하는 쪽은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영향이나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의 '사냥과 낚시의 무덤' 등 에트루리아 무덤에는 이와 유사한 모티프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도약하는 인물 모티프도 등장합니다. 당시 에트루리아인들이 파에스툼과 매우 가까운 셀레 강 북쪽에 정착해 있었기에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이빙 장면의 양식화와 추상화 경향은 에트루리아 무덤 벽화에 만연한 자연주의적 표현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도상학과 그 표현 방식 모두 전형적으로 그리스적이라는 지적입니다.

한편 포시도니아(파에스툼) 지역에 무덤 벽화 전통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최근 수십 년간 기원전 6세기 말~5세기 초에 걸쳐 그려진 무덤 20여 기가 발굴되면서 입증되었습니다. 다만 그중 비유적 장면을 담고 있는 무덤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비유적 장식을 지닌 다른 무덤들도 이 지역에서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리스인이 아닌 이탈리아계 부족 루카니아인이 도시를 정복한 이후의 것이다.
'수영선수의 무덤'의 프레스코화는 현재 파에스툼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누구나 그 원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미국 고고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Archaeology) | 루베르, 아녜스(Agnès Rouveret). La Tombe du Plongeur et les fresques étrusques : témoignages sur la peinture grecque. Revue Archéologique, no. 1,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74, pp. 15–32, jstor.org/stable/41744366 | 데이지 워랜드(Daisy Warland), Que représente la fresque de la paroi Ouest de la tombe au plongeur de Poseidonia?, Kernos, 12 | 1999. doi.org/10.4000/kernos.721 | Alberghina MF, Germinario C, Bartolozzi G, Bracci S, Grifa C 외. (2020). The Tomb of the Diver and the painted tombs of Paestum (southern Italy): New insights through a comparative archaeometric study. PLOS ONE 15(4): e0232375. doi.org/10.1371/journal.pone.0232375 | 마리오 나폴리(Mario Napoli), La tomba del tuffatore |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