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브렌티 베리아(Lavrenty Beria, 사진: 퍼블릭 도메인)
볼셰비키 혁명가에서 비밀경찰 수장으로
라브렌티 베리아(1899~1953)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이자, 소련 비밀경찰 조직인 NKVD(내무인민위원부)의 수장이었다. 그는 압하스 지방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바쿠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1917년 볼셰비키에 입당했고, 대략 4년 후에는 초기 비밀경찰 조직인 체카(Cheka)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4년, 베리아는 조지아에서 발생한 민족 봉기를 진압하는 작전에 참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자캅카스 지역 OGPU(통합국가정치국) 비밀정치국 국장으로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권력의 길에 올라섰다.
숙청과 굴라크의 설계자
1932년 베리아는 자캅카스 전역의 당 지도자로 부상했고, 불과 2년 만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그는 군과 당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대숙청의 공동 기획자였으며, 정치범들을 강제 노동시켰던 악명 높은 수용소 시스템인 굴라크(Gulag)를 창설한 인물이기도 하다.
니콜라이 예조프가 실각하자 베리아는 그의 뒤를 이어 NKVD의 수장 자리에 올랐고, 1945년에는 소련 원수 계급까지 거머쥐며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몰락과 최후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베리아에게 스탈린 공격(암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의 경력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흐루쇼프, 말렌코프, 몰로토프 등 당내 경쟁자들이 그를 고발했고, 결국 사형이 선고되었다. 다만 이 재판은 그가 이미 체포 직전에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치러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잔혹함의 화신, 카틴 학살의 주범
라브렌티 베리아는 극도로 잔혹하고 냉혹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스탈린이 내린 가장 피비린내 나는 명령조차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집행했다. 특히 1939년 소련의 폴란드 침공 이후 폴란드인들에 대한 탄압과 추방을 총괄했으며, 수천 명의 폴란드 장교들이 학살당한 카틴 학살의 배후 인물 중 하나로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