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포(Grifo, 726~753)는 프랑크 왕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던 궁재(宮宰) 샤를 마르텔의 서자(庶子)입니다. 정당한 상속권을 주장하며 이복형제들과 운명적으로 얽힌 그의 삶은, 메로빙거 왕조 말기 프랑크 왕국의 격동적인 권력 다툼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왕국을 빼앗긴 서자
741년 샤를 마르텔이 세상을 떠나자, 정식 결혼에서 얻은 두 아들인 카를로만과 피핀(훗날의 피핀 3세)이 왕국을 분할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포는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앗겼다고 판단했고, 왕국을 차지한 두 형제에게 맞서며 반란을 계획했습니다.
감금, 탈출, 그리고 망명
반란 시도는 좌절되었고, 그리포는 뇌프샤토(Neufchâteau) 성에 유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이의 은밀한 도움으로 감옥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남쪽으로 도피하여 아키텐 공작 후날드(Hunald)의 보호 아래 새로운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패배와 무릎 꿇기
피핀이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면서 아키텐마저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포는 작센 지역으로 다시 피신했으나, 결국 피핀의 군대 앞에서 저항을 포기하고 무기를 내려놓았습니다.
피핀의 관용, 르망 공작 임명
흥미롭게도 피핀은 동생에게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리포에게 르망 공작(Duc du Mans) 칭호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루아르 강 북부 일대에 이르는 약 12개의 백작령까지 하사하며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비극적 최후
그러나 그리포의 야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753년, 그는 롬바르드 왕국으로 망명하여 다시 기회를 노리려 했으나, 알프스 산맥을 넘던 중 생장드모리엔(Saint-Jean-de-Maurienne) 인근에서 피핀의 추격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왕좌를 향한 평생의 열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채, 27년의 짧은 삶이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