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휘어진 선체 라인과 금장(金裝) 뱃머리를 갖춘 증기선 '샤르회른(Schaarhörn)'은 1908년에 건조된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을 항해해 온, 함부르크 박물관 선박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보석입니다.
이 배가 유독 세련된 외관을 지닌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샤르회른'은 원래 함부르크 항구를 통해 카이저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 같은 도시의 저명한 귀빈들을 안내하기 위한 소위 유람선으로 설계된 배였습니다. 동시에 전기항만건설국은 1907년에 취역한 이 선박을 측심 증기선으로 활용해 엘베 강의 수심을 측정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제국 해군은 이 쌍나사 기선을 기뢰 제거 작전에 투입했고, 이 시기 시인 요아힘 링겔나츠(Joachim Ringelnatz)도 여러 차례 승선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해군에 자원한 그는 1917년, 함장으로 승진한 영광을 이 배 위에서 누리기도 했습니다.
측량선에서 난민 구조선까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샤르회른'은 잠시 쿡스하펜의 노동자·군인 협의회를 위한 숙박 및 대기선으로 쓰였고, 1919년 이후 한동안 운항이 중단되었다가 1925년에야 다시 취역합니다. 이후 이 배는 본래의 목적인 측량 및 순회 증기선 임무로 복귀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3월부터는 발트해에서 자스니츠(Sassnitz), 스비네뮌데(Swinemünde)와 동프로이센 여러 지역의 난민들을 대피시키는 구조선으로 활약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쿡스하펜 인근 엘베 강어귀에서 측량선으로 복귀했고, '샤르회른'은 1972년까지 꾸준히 운용되었습니다.
영국 매각, 그리고 고향 함부르크로의 귀환
1973년 이 증기선은 영국 북동부 뉴캐슬에 매각되었고, 1979년에는 영국 북서부 메리포트로 옮겨져 장차 박물관 항구에 전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오히려 급속히 낡아갔습니다. 결국 1990년, 알토나 상인 협회인 코메르츠-콜레기움 알토나(Commerz-Collegium Altona)가 이 배를 인수해 함부르크로 다시 데려왔습니다. 이후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고, 5년 뒤 '샤르회른' 개발 협회에 인계되었습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움직이는 박물관
'샤르회른'은 1995년부터 실제로 항해하는 박물관 선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소유주는 함부르크 해양 재단이며, 자원봉사자들이 선박 보존과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언제든 새로운 자원봉사자를 환영합니다. 5월부터 10월까지의 시즌에는 엘베 강 정기 크루즈와 킬 운하를 지나는 장거리 항해에 손님들을 초대하며, 이러한 항해 수익은 선박 유지에 필요한 운영 비용으로 충당됩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 방역 조치로 인해 현재로서는 항해가 불가능합니다(2020년 10월 11일 기준).
'샤르회른'과 함께하는 특별한 항해
'샤르회른'은 매년 여러 차례 손님 항해를 떠납니다. 항해 중 승객들은 배를 더 깊이 탐방하며 엔진실과 보일러실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큰 창문이 빛을 머금은 아름답고 유서 깊은 아르누보 살롱은, 이 배가 원래 항구의 귀빈들을 모시기 위해 태어났음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여름에는 '샤르회른'이 한자하펜 브레머 카이(Hansahafen Bremer Kai)의 50년대 창고 근처에 정박하고, 겨울에는 함부르크 하펜시티 산토르하펜(Sandtorhafen)의 전통 선박 항구에서 겨울을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