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침몰에서 부활까지, 전설의 범훈련선 '고르흐 포크'(I)의 파란만장한 90년

침몰에서 부활까지, 전설의 범훈련선 '고르흐 포크'(I)의 파란만장한 90년

오늘날 독일에서 '고르흐 포크(Gorch Fock)'라고 하면 대부분 1958년 건조되어 킬(Kiel)을 모항으로 하는 독일 해군의 유명 훈련선(II)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 전 세대인 '고르흐 포크'(I)는 1933년 함부르크에서 탄생한 뒤 침몰과 인양을 거듭하며 극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현재 이 배는 발트해의 문호 도시 슈트랄준트(Stralsund) 항구에서 박물관 선박으로 새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불과 100일 만에 완성된 함부르크의 자랑

'고르흐 포크'(I)는 1933년 당시 독일 제국을 위해 함부르크의 조선소 블롬 운트 포스(Blohm + Voss)에서 단 100일 만에 건조되었습니다. 1933년 5월 3일에 진수된 이 범선은 1939년까지 훈련선으로 활약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여러 항구를 전전하며 주거용 선박으로 쓰였고, 마지막에는 슈트랄준트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침몰했다가 다시 일어서다 — 슈트랄준트로의 귀환

종전이 확실시되자 배는 장비를 걷어낸 채 퇴역했습니다. 1945년 4월 30일 오후, 승무원들은 스트렐라순드(Strelasund) 수역에서 '고르흐 포크'(I)를 직접 침몰시켰습니다. 1947년 소련은 네 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배를 인상했고, 로스토크와 비스마르에서 1950년까지 수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이 배는 '토바리슈치(Towarischtsch)'라는 이름의 훈련선으로 거듭나 세계 바다를 항해했습니다. 1992년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달고 빌헬름스하펜(Wilhelmshaven)으로 옮겨졌으며, 1999년에는 '바다 위의 EXPO 2000' 행사의 주요 볼거리 가운데 하나로 꼽혔습니다. 2003년에는 Tall-Ship Friends e.V. 협회가 이 배를 매입해 슈트랄준트로 옮긴 뒤 대대적인 복원을 진행했습니다.

700만 유로, 떠 있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오늘날 슈트랄준트 항구의 박물관 선박으로 운영 중인 '고르흐 포크'(I)가 장기간 안전하게 떠 있으려면 긴급한 재개조가 필요하지만, 관리 협회에는 이를 감당할 자금이 없습니다. 전문가 감정 보고서에 따르면 약 700만 유로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에 2018년 11월 슈트랄준트 시의회는 선박을 매입하고 협회에 95만 유로를 지급하기로 결정했으며,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Mecklenburg-Vorpommern) 주가 개조 공사에 재정 지원에 나섰습니다. 협회는 앞으로도 선박의 운영 주체로 남게 됩니다.

6척의 자매선, 하나의 계열

'고르흐 포크'(I)는 설계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서로 흡사한 6척의 항해 훈련선 계열에 속하며, 이 중에는 '고르흐 포크'(II)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4척의 행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글(Eagle) — 전신은 '호르스트 베셀(Horst Wessel)'로, 현재 미국 해안경비대 소속으로 새 모항인 미국 뉴런던(New London)에서 연중 약 9개월을 머뭅니다.
  • 알베르트 레오 슐라게터(Albert Leo Schlageter) — 1961년부터 포르투갈 국기를 달고 항해 훈련선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 미르체아(Mircea) — 루마니아의 항해 훈련선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헤르베르트 노르쿠스(Herbert Norkus) — 완공되지 못한 채 종전 후 연합군에 압수되었으며, 1947년 독가스 탄약을 싣고 스카게라크(Skagerrak) 해협에 침몰되었습니다.

'고르흐 포크'의 실체, 작가 요한 키나우

이 배들에게 붙은 이름은 실존한 작가 '고르흐 포크'에서 유래했습니다. 필명 고르흐 포크의 본명은 요한 키나우(Johann Kinau)로, 1880년 8월 22일 함부르크 핑켄베르더(Hamburg-Finkenwerder)에서 태어나 고지 독일어와 저지 독일어로 시와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1912년 출간된 그의 작품 『Seefahrt ist not』은 오늘날 독일 항해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습니다. 키나우는 1916년 스카게라크 전투(유틀란드 해전)에서 침몰한 순양함 'SMS 비스바덴'의 선원으로 복무하던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