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로 '헤르메스', 로마에서 쓰인 라틴어로 '메르쿠리우스', 영어로 '머큐리', 프랑스어로 '에르메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의 이 신이 바로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입니다.
최근 화제작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처럼 헤르메스를 어원으로 삼는 이름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런 신,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도둑? 전령? 발명가? 죽음의 안내자? 헤르메스의 역할이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저마다 고유한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예를 들어 헤스티아는 화롯불, 아레스는 전쟁을 맡고 있죠. 하지만 헤르메스는 '어떤 신인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그 영역이 넓습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지만, 제우스의 정처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아틀라스의 딸인 여신 마이아인데, 아틀라스는 '지도집(atlas)'이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죠.
헤라에게 들키지 않도록 제우스가 몰래 만나 태어난 아이라, 헤르메스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도둑질의 재능을 지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는 북유럽 신화의 로키와 함께 신화 세계의 대표적인 '트릭스터(장난꾸러기)'로 불리기도 합니다.
헤르메스는 태어나자마자 아폴론의 소를 훔치는 짓을 저지릅니다. 제우스에게 혼이 나자 곧바로 돌려주긴 했지만, 헤르메스에게는 훌륭한 생각이 있었으니, 사실 자신이 진짜로 원했던 것은 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고난 발명가의 재능으로 리라(수금)를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 아름다운 소리는 아폴론의 귀에 닿았고, 리라가 갖고 싶어진 아폴론이 헤르메스에게 청하자 헤르메스는 "그럼 훔친 소와 바꾸자"라고 제안했고, 아폴론은 이를 승낙합니다.
마치 원조 톰 소여 같은 일화죠.
이후에도 헤르메스는 여러 가지 발명품을 만들어 아폴론에게 건네주었고, 아폴론은 그 보답으로 뒤에서 소개할 편리한 아이템을 헤르메스에게 내어줍니다.
뿐만 아니라 헤르메스는 아레스 대신 헤라의 젖을 빨며 자랐다는 터무니없는 행보도 보입니다. 잠든 헤라의 품에 아기를 몰래 안기자 흘러나온 젖이 하늘을 가로질러 '은하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죠.
제우스의 불륜에 늘 분노하는 신은 헤라뿐입니다. 다른 사생아들이 헤라의 박해를 받는 것과 달리, 장난꾸러기 헤르메스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 덕분에 신이든 인간이든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헤르메스의 장비

헤르메스는 발명의 신인 동시에 상업의 신이기도 하여, 그리스 신화의 신들 중 가장 화려한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카두케우스'라 불리는 지팡이는 헤르메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 인류 역사에서 상업과 교통의 상징으로 친숙해 왔습니다. 뱀이 감긴 이 지팡이는 의학의 상징으로도 자주 쓰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 로고에 사용된 것은 뱀이 한 마리 감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흔히 혼동되곤 합니다.
그는 깃털 장식의 날개 달린 모자를 즐겨 쓰며, 황금 날개 신발 '탈라리아'를 신으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훗날 영웅 페르세우스가 이 탈라리아를 빌려 신고 메두사를 물리치기도 했죠.
그런데 이 탈라리아의 원래 주인은 사실 비너스(아프로디테)였습니다.
비너스를 설득하고 싶었던 헤르메스는, 그녀가 소중히 여기던 황금 샌들을 훔쳐 넘기는 책략으로 마음을 얻어냅니다. 정말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말밖에 안 나오는 대목이죠.
헤르메스와 비너스 사이에서도 자식이 태어났는데, 문제는 비너스가 애초에 헤르메스의 형제인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라는 점…
참으로 골치 아픈 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