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학에서 뒤처진 일본
전간기 초기, 일본은 암호학 분야에서 다른 열강들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었습니다. 특히 육군은 이 분야에서 심각하게 낙후된 상태였습니다. 일본 입장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이 상황은 1920년대에 들어서야 변화의 조짐을 보였는데, 그 배경에는 이미 폴란드-볼셰비키 전쟁(1919~1921)에서 뛰어난 능력을 입증했던 폴란드 암호학자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자국 암호 기술에 많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첩보 업무를 담당하던 육군 참모본부 소속 장교들은 이를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일본 참모본부를 대표해 오랫동안 폴란드에 머물렀던 야마와키 마사타카(Yamawaki Masataka) 대위는 폴란드군 관계자들과 쌓아온 좋은 인맥을 활용해 양국 참모부 간의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야노시 코발레프스키(Jan Kowalewski). 일본인들에게 암호 해독을 가르친 인물입니다(사진은 소령 시절).
장기적으로 그는 폴란드가 일본 암호 요원들을 훈련시켜 주길 바랐습니다. 폴란드 측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일본 참모본부 제2국장 이타미 마쓰오(Itami Matsuo) 소장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야마와키 대위가 남긴 회고에 따르면, 당시 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류 육군이 어찌 삼류 군대에게 배울 수 있는가?" 그럼에도 결국 훈련은 승인되었지만, 일본 장성들은 여전히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습니다.
다이렌 회담에서 드러난 실력
폴란드가 자국 암호학의 실력을 뽐낼 기회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찾아왔습니다. 1921년에서 1922년으로 넘어가는 시점, 일본이 소비에트 러시아 대표단과 다이렌(현 중국 다롄)에서 진행한 회담 덕분이었습니다. 당연히 일본 첩보 장교들 일부도 회담에 동행했는데, 그들의 임무는 러시아 수도에서 발신된 전문을 가로채 해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훈련 수준이 금세 드러났고, 전문들은 끝내 해독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해당 전문들은 폴란드 주재 일본 무관에게 넘겨졌습니다. 폴란드 암호학자들은 단 일주일 만에 해독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 뛰어난 자질을 입증하며 일본이 내린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1920년대 초 일본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암호 분야만큼은 다른 강국들에 크게 뒤처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스와 강변에서 훈련을 받기 위해 폴란드를 찾았습니다. 사진은 1921년 러시아 내전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한 일본 보병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23년, 코발레프스키 대위가 일본으로 건너가 참모본부 제2국 장교들을 대상으로 3개월 과정의 교육을 맡게 되었습니다.
훈련의 성과
코발레프스키 대위의 짧은 일본 체류 일정은 그야말로 빠듯했습니다. 그는 첩보 기술을 배우는 일본 수강생들에게 각종 소련 암호를 해독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암호화와 해독의 모든 기법, 외교·첩보 암호의 구조 등이 폭넓게 다루어졌습니다.
폴란드 대위의 방문 덕분에 일본 암호학의 수준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몇 단계나 도약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이후 자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협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양국은 차례로 선발된 일본 장교들을 약 1년간의 실무 훈련을 위해 폴란드로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에게 폴란드와의 협력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는 당시 도쿄 주재 폴란드 무관 헨리크 플로야르라이흐만(Henryk Floyar-Rajchman) 중령이 남긴 기록에서 잘 드러납니다.
"H 대령을 미래에 대체할 수 있는 최고의 부하 장교 두 명을 선발해 파견한다. H 대령은 바르샤바에서의 근무를 무척 좋게 기억하며, 파견될 장교들이 성실히 일하고 본국에서도 업무를 계속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의 도움 덕분에 일본 참모본부가 암호 업무에 큰 비중을 두게 되었으며 / ... / 앞으로 소련 관련 사안에서도 협력하고 싶어 한다고 적었다. 우리는 유럽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암호 기술을 보유했다는 평판을 얻었다."

도쿄 주재 폴란드 무관 헨리크 플로야르라이흐만 중령은 일본이 폴란드 암호학자들과의 협력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사진은 백색 바지 차림으로, 후일 상공부 장관 시절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폴란드에서 배운 경험이 이후 중국 근무에서도 빛을 발했다는 사실입니다. 비스와 강변에서 훈련받은 일본 장교들이 중국 주재 일본 첩보 기관을 지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