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결혼이 아닌 섹스를 추구한 독일 국방군 병사들

제복의 유혹, 점령기 네덜란드의 독일군 병사들

지난주 언론에서는 독일 국방군(베어마흐트) 병사들의 성적 매력에 관한 연구 결과가 보도되었습니다. 남성적인 외모에 주머니마다 콘돔을 채운 이들이 네덜란드에 현대적 성 도덕을 가져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뉘앙스를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해당 연구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제복을 입은 남성은 언제나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습니다. 독일 국방군 병사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특히 모험을 갈망하던 10대 소녀들이 이 젊은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과연 이 연구의 배경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요?

선전은 통하지 않았다

라우라 파넨브루크(Laura Fahnenbruck)는 11월 12일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점령기 독일 국방군 병사들의 일상적 성생활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녀의 연구는 단발적인 성적 스캔들뿐 아니라 진지한 연애 관계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저는 주로 육군 지휘부가 수립한 전략이 실제 전시 상황에서도 실행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잘못된 길로 독일 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게르만 형제국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인은 '친족'이었기에, 프랑스인과 달리 훌륭한 결혼 상대로 여겨졌죠. 정책의 방향은 네덜란드 여성과의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었지만, '도시의 타락한 여성들을 경계하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파넨브루크에 따르면 전쟁이 진행될수록 선전은 더욱 강화되었고, 여성에 대한 묘사 역시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최종 승리를 선전하고, 병사들이 전장 밖에서도 승리에 기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방군의 이러한 정책은 병사들의 실제 성행동과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혼 건수에 대한 신뢰할 만한 통계는 없지만, 아마도 수천 건 정도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녀는 네덜란드 여성들과 독일 병사 사이의 느슨한 성관계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흔했다고 추측합니다. "자료를 보면 독일인과 네덜란드인이 짝을 이룬 커플은 거리에서 용납되지 않고 오히려 야유와 비난을 받았습니다. 병사들 역시 우월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네덜란드라는 나라뿐 아니라 술집과 여성까지 차지했다고 여겼죠. 이는 종종 네덜란드 남성들과의 몸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반면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접촉이 훨씬 수월했습니다. 예컨대 병사가 민가에 숙영했을 때 말입니다."

국방군의 결혼 장려 정책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자녀 인정 소송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임신한 여성 입장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국방군 병사들은 아이 인정을 피하려고 필사적이었습니다. 그 소녀가 동시에 다른 병사들과도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동료들에게 증언을 요청하며, 독일에 있는 자신의 가족까지 동원해 거짓 무대를 꾸몄습니다. 애초에 두 여성과의 결혼은 불가능했고, 병사들 스스로도 네덜란드 여성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일시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동기는 여전히 미궁 속

법원 기록 외에 파넨브루크는 주로 독일군과 네덜란드 경찰의 공식 기록을 조사했습니다. 개인이 남긴 문서(에고 다큐먼트)는 상대적으로 적게 활용되었으며, 병사들이나 그들과 어울린 소녀들의 내면적 동기는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 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찰 보고서에서 제가 주로 발견한 것은 거리에서 체포된 미성년 여성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경찰은 공원에서 콘돔도 발견했습니다. 이런 사건이 보고서에 오른 이상, 그것은 특별하거나 새로운 상황이었다고 결론 내립니다. 아니라면 굳이 기록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경찰은 이 소녀들에게 독일 병사들과 어울릴 처지가 아니라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였을까요? 독일 병사 곁에 서 있다는 허세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점령기에 모험의 여지가 더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소녀들은 훨씬 많은 자유 시간을 갖게 되었고, 동시에 젊은 병사와 눈에 띄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생겼습니다."

병사들의 규모 역시 명확하지 않습니다. "국방군은 총 180만 명으로 구성되었지만, 전투는 네덜란드에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연평균 10만 명의 병사만이 이곳에 주둔했습니다. 병사들은 꽤 많은 여가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을 소녀들과 보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은 본국의 가족들에게 보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전쟁이 얼마나 멋졌는지 집에 보여주기 위해 추억 앨범을 만들었죠. 병사에게는 섹스를 많이 한다는 이미지가 있었으므로, 사진에도 그것이 반영되어야 했습니다."

'섹스 공장'이라 불린 군영 매춘업소

국방군은 전투력 유지를 위해 병사들의 건강을 관리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남성들의 성적 에너지를 발산할 통로도 필요로 했습니다. 육군 지휘부는 매춘부와의 성관계를 본국에 있는 아내와의 관계에 대한 '보충'으로 간주했습니다. 군은 병사들에게 콘돔을 지급했고, 성병이 줄어들지 않자 위생 상태를 감시하기 위해 직접 매춘업소를 설립했습니다. 파넨브루크는 "이 정책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현대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목적은 병사들을 전장을 위해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깨끗한' 상태로 독일로 돌려보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진보적 시각이 네덜란드의 성 도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매춘업소 자체도 암스테르담 홍등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물랭루즈풍의 화려한 분위기가 아니라, 도심 밖에 위치한 임상적인 섹스 센터였습니다. 이 대규모 매춘업소는 독일 제국 전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설립되어 병사들에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매춘부들에게는 고용 계약서가 주어졌는데, 이는 네덜란드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방군 매춘업소에서는 성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사와 매춘부 모두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받아야 했습니다. 네덜란드 경찰은 감염된 여성들을 수용해 병원으로 이송했고, 치료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방군 안의 여성들은 어땠을까요? "국방군 병사 20명 중 1명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군대 내에서 평등한 지위를 갖지 못했고, 초기에는 주로 행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무기를 다루는 임무에도 투입되었습니다. 여성 병사를 대상으로 네덜란드인과의 결혼을 장려하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았고, 애초에 그것이 허용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실제로 저는 독일 여군과 결혼하기 위해 국방군에 자원입대한 네덜란드 남성의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