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프로타시오 리잘 박사(Dr. José Protacio Rizal, 1861년 6월 19일 ~ 1896년 12월 30일)는 스페인 식민 통치 말기에 활동한 필리핀의 민족주의자이자 다재다능한 지식인입니다. 그는 오늘날 필리핀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본업은 안과 의사였지만, 리잘은 작가로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정치 개혁을 요구했던 '선전운동(Propaganda Movement)'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민족의 각성을 이끌었습니다.
초기 생애와 교육
리잘은 필리핀 라구나주의 칼람바(Calamba)라는 마을에서 중국계와 스페인계 혈통을 이어받은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16세의 나이에 마닐라의 산토 토마스 대학교(University of Santo Tomas)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스페인 식민정부의 개혁을 촉구하던 선전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서, 이후 평생을 걸친 민족개혁 활동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저술과 정치 활동
리잘의 저작 중에서도 특히 『놀리 미 탕헤레(Noli Me Tangere)』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El Filibusterismo)』라는 두 소설은 스페인 식민 체제와, 당시 필리핀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수도회 사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필리핀 민족주의를 일깨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수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독립 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배와 처형
1896년 리잘은 민다나오 섬의 외딴 곳인 다피탄(Dapitan)으로 유배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의료 활동을 이어가고 과학 연구에 몰두하며 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체포되어 마닐라로 압송된 그는 반역죄로 재판을 받았고, 1896년 12월 30일 스페인 식민정부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이 장소는 현재 리잘 공원(Rizal Park)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12월 30일은 '리잘 데이'라는 이름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리잘이 남긴 유산
리잘의 죽음은 그를 필리핀 독립운동의 순교자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저작과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필리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는 용기와 애국심, 뛰어난 지적 업적으로 국가적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