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기원전 29년~서기 117년, 로마 제국의 전성기: 군단에서 콜로세움까지

기원전 29년~서기 117년, 로마 제국의 전성기: 군단에서 콜로세움까지

로마군: 제국을 지탱한 강력한 군사 조직

로마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에서 승리하며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조직된 군대를 기반으로 로마 제국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병사들은 매우 규율 있는 부대 단위로 싸웠습니다. 병사 100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켄투리아(centuria)라고 불렀고, 켄투리아들이 모여 코호르스(cohort)를 이루며, 10개의 코호르스가 하나의 군단(legion)을 구성했습니다.

공화정 시대에는 토지를 소유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일정 기간 동안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군대에서 경력을 쌓은 훈련된 직업군인이었습니다.

로마 도시의 생활상

로마인들은 정복한 지역에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각 지역, 즉 속주는 총독(governor)이 통치했으며, 총독은 주민들이 세금을 내고 로마의 법률을 준수하며 로마 신들을 경배하는지 감독했습니다.

대부분의 도시 주민들은 좁고 비좁은 공동주택(인술라)에 살았지만, 부유층은 그늘 진 정원으로 둘러싸인 아름답게 꾸며진 방들이 있는 빌라(villa)에서 생활했습니다. 일부 빌라에는 바닥 난방과 상수도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기원전 29년~서기 117년, 로마 제국의 전성기: 군단에서 콜로세움까지

오락과 유희: 검투사와 전차 경주

부유한 로마인들은 노예들이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여가를 즐길 시간이 많았습니다. 로마에는 노예가 너무 많아 가난한 로마 시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들을 달래기 위해 황제는 무료로 곡물을 배급하고, 짜릿한 오락거리인 '경기'를 열어주었습니다.

검투사 경기: 검투사들은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싸우도록 훈련된 노예나 죄수였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관중들이 패자의 생사를 결정했습니다. 이 잔혹한 스포츠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경기는 거대한 석재 경기장인 원형극장(암피테아트룸)에서 열렸습니다.

전차 경주: 가장 인기 있던 경기는 '서커스(circus)'라 불리는 경기장에서 열린 전차 경주였습니다. 매우 위험한 경기라 기수들이 종종 전차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27년 —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다

옥타비아누스는 '존귀한'이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를 받으며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공화정은 원수정(Principate)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아우구스투스가 '프린켑스(princeps, 첫 번째 시민)'이자 황제, 그리고 로마 제국의 절대 통치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로마는 지중해 연안 거의 모든 땅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후 150년간 더욱 영토를 넓혀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약 서기 29년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로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반란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예루살렘에서 그를 체포했습니다. 예수는 로마 속주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명령에 따라 그곳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서기 48~58년 — 기독교의 확산

기독교인들은 로마 신들을 숭배하기를 거부하며 로마 전통과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일부 황제들은 이들을 반역자로 간주해 수천 명을 체포하고 처형했으며, 어떤 이들은 관중을 즐겁게 하려고 사자에게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체포를 피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은 카타콤(지하 묘소)에 몰래 모여 은밀히 신을 숭배했습니다. 이러한 비밀 집회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 온갖 유언비어를 낳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지하 은신처에서 기괴한 의식을 벌이고, 피 흘리는 제사를 지내며, 세례 중 아이를 익사시키고, 자신들의 우상이 십자가형으로 죽었다는 것을 기념한다며 시체를 먹고, 불멸을 얻기 위해 피를 마신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인들이 가장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기독교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든 로마 시민에게 황제를 경배하는 것은 의무였기 때문입니다.

서기 70년 — 티투스, 예루살렘의 제2성전 파괴

유대인들(옛 이름 헤브라이족)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다시 한번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기원전 29년~서기 117년, 로마 제국의 전성기: 군단에서 콜로세움까지

서기 72~80년 — 로마 콜로세움 건설

콜로세움은 로마의 경기와 오락을 위해 지어진 가장 큰 시설이었습니다. 5만 개의 좌석과 80개의 출입구를 갖추어 관중들이 빠르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모든 로마 시민은 무료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으며, 경기는 명성을 쌓으려는 고위 관리들이 주관했습니다.

서기 79년 — 베수비오 화산 폭발, 폼페이 소멸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의 크고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화산 분출로 도시는 두꺼운 화산재와 용암 아래 완전히 파묻혀 사라졌습니다.

서기 117년 —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

황제 트라야누스의 통치 기간 동안 로마 제국은 오늘날의 영국부터 중동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이 시기가 로마 제국 역사상 영토가 가장 넓었던 절정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