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의 죽음은 전 세계를 애도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는 용기, 품위, 평등 의식이 마지막까지 살아 숨 쉬던 인류의 보배였습니다. 인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내며 자신의 이상을 끝까지 지켜낸 '마디바'는 출옥 후 간수들을 향해 복수하는 대신 관용을 선택했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모질게 대한 사람들에게조차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이러한 절제의 모범은 1990년 석방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영원한 자유를 향한 넬슨 만델라의 여정을 진심 어린 작별 인사와 함께 돌아봅니다.
여섯 개의 이름으로 불린 남자
1918년 7월 18일, 남아프리카 동부의 작은 공동체 움타타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에게 코사어로 '롤릴라라(Rolihlahla)', 즉 "말썽꾼"이라는 뜻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013년 12월 5일,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긴 인생에서 만델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학교 첫날, 그의 선생님은 그에게 '넬슨(Nelson)'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넬슨 만델라 재단에 따르면 당시에는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부르기 쉽도록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영어 이름을 주는 것이 관행이었고,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선생님이 현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에게 '세례'를 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16세의 만델라는 다른 코사 소년들처럼 전통 의식을 통해 정식으로 성인이 된 뒤, "평의회 창설자" 또는 "대화의 중재자"를 뜻하는 '달리붕가(Dalibunga)'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애정과 존경의 표시로 자신이 속한 템부(Tembu) 일족의 이름을 딴 '마디바(Madiba)'로도 불렸습니다. '아버지'를 뜻하는 코사어 '타타(Tata)', 그리고 '할아버지'의 줄임말이자 동시에 '위대하고 장엄한'이라는 의미를 담은 '쿨루(Khulu)' 역시 그의 애칭이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투쟁
이것이 만델라의 삶이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인종 집단 간 분리와 백인 우월주의를 제도화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맞서 초기에는 무력 저항이라는 방법까지 택한 투사의 삶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 제도가 확립되던 1940년대 후반, 인구의 극소수만이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만델라는 억압적인 정권으로부터 국민을 해방하기 위해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저항을 조직했고, 신병 확보를 피해 은신하며 사형을 각오하고 경제 파탄 행위(사보타주) 계획을 주도했습니다. 전통 템부 복장을 입고 청중 앞에 선 그의 도전은 결국 정부 전복 혐의 유죄 판결로 이어졌고, 그는 1964년 6월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7년의 수감 생활, 꺾이지 않은 신념
포로 생활 동안 만델라는 매일 아침 석회 채석장의 석공 노역에 동원되어 폐와 시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지만, 감옥 안에서도 신념을 끝내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기간에 그는 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와 아들을 잃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가혹한 환경 속에서 런던 대학 외부 프로그램 통신 과정을 통해 공부하며 법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80년대, 오랜 동지이자 망명 중이던 올리버 탐보가 만델라의 석방을 위한 국제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대한 제재 강화는 실질적인 결실을 맺었고, 27년간의 투옥 끝에 1990년 2월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가 만델라를 석방했습니다. 이후 다인종 민주주의 건설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소수 백인이 자유 선거 요구를 거부하면서 충돌이 격화되어 국가는 내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노벨 평화상, 그리고 최초의 자유 선거
1993년 12월,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는 국가 통합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공로로 공동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5개월 후인 1994년 4월, 수백만 명이 남아프리카 역사상 최초의 자유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유권자이자 후보로 출마한 만델라는 그 선거에서 승리하여 같은 해 5월 10일 취임했습니다. '대화의 중재자'라는 이름값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자이자 세계적 지도자로서, 조국의 통합을 재건할 유일한 길인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며 자신이 지켜낸 자유와 정의의 이상을 행동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는 증오보다 용서를 선택했고, 언제나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적과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만년의 그는 '타타', '쿨루', '마디바'라 불리며 전 세계 평화를 향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만델라는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에 대한 전설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https://www.bbc.co.uk/world/news/2013/12/111222_new_mandela_obituary_am.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