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대담한 기습 작전... 이스라엘 특수부대, 이집트 내륙 깊숙이 침투해 핵심 시설을 파괴하다

대담한 기습 작전... 이스라엘 특수부대, 이집트 내륙 깊숙이 침투해 핵심 시설을 파괴하다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분쟁은 '비공식적' 형태로 계속되었다. 특히 이집트와의 양측 공격과 돌발 사건들은 1970년까지 이어졌으며, 이는 '소모전(War of Attrition)'이라 불리게 되었다.

보복의 명분, 소모전의 시작

1968년, 이집트 포병대가 수에즈 지역의 이스라엘 진지에 대한 대규모 포격을 감행해 이스라엘 병사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집트의 핵심 인프라를 강타하기로 결정했다.

임무를 맡은 것은 이스라엘 낙하산 여단 정찰 중대인 '사예레트 차나님(Sayeret Tzanhanim)'이었다. 그들의 표적은 룩소르에서 북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이집트 내륙 도시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 위치한 케나(Qena) 교량과 댐 및 발전소였다.

700km의 위험한 원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스라엘 낙하산 부대원들은 목표 지점까지 700km를 이동해야 했고, 귀환 역시 같은 거리를 다시 날아야 했다. 마탄 빌나이(Matan Vilnai)의 지휘 아래 단 14명의 낙하산 부대원들이 이 기습 작전을 수행했으며, 필요한 장비와 함께 슈퍼 프렐롱(Super Frelon) 헬기 4대로 목표 지역까지 수송되었다.

헬기 2대는 요원들을, 나머지 2대는 케나 교량과 나그함마디 댐에 설치할 폭탄을 운반했다. 또 다른 헬기 3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 상태로 배치되었다. '경질' 표적을 파괴하기 위해 헬기들은 1,000파운드 폭탄을 탑재했는데, 이 폭탄은 교량과 댐 위에 부양된 상태로 투하된 후 시간지연 신관에 의해 기폭되도록 설계되었다.

이스라엘 낙하산 부대원들은 이번 기습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무도 생환을 확신하지 못했다. 출발 전 그들은 함께 저녁을 먹었고, 빌나이의 회고에 따르면 '죽음을 눈앞에 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영광 혹은 죽음으로의 비행

1968년 10월 31일 저녁, 헬기들이 이륙했다. 3시간의 비행 끝에 이스라엘 부대는 목표 지역 상공에 도달했다. 낙하산 부대원들은 발전소에서 너무 가깝지 않은 지점에 착륙했다. 폭발물을 가득 실은 채 그들은 발전소를 향해 질주했고, 현장에 도착하자 빌나이가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울타리를 가장 먼저 넘었다.

그러나 울타리 너머에는 이집트 경비병이 있었고, 빌나이는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병사는 벌벌 떨며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그사이 다른 이스라엘 대원들도 내부에 진입해 우지(Uzi) 기관단총으로 경비병 4명을 신속히 제거했다. 동시에 폭탄을 실은 두 대의 헬기는 소형 크레인을 이용해 댐과 교량 위에 폭탄을 하강시키고 있었다. 정확히 밤 10시(22시), 두 개의 폭탄이 폭발하며 표적들을 파괴했다.

한편 발전소에서는 이집트군이 반격에 나섰고, 낙하산 부대원들은 필사적으로 교전을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전압 변압기 9개 중 7개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폭파했다. 곧이어 헬기들이 도착해 그들을 실어 귀환길에 올랐다. 놀랍게도 부상당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작전의 결과

다음 날, 이스라엘 정찰기가 해당 지역을 촬영했고, 이를 통해 입힌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케나 교량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댐은 매우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발전소는 가동 불능 상태가 되어 카이로까지 전력 공급이 끊겼다. 이집트는 또한 강력한 병력을 나일 계곡 지역으로 파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수에즈 전선에 가해지던 압박은 한층 완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