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아 전투: 한니발 앞에서 궤멸당한 로마군
기원전 218년 겨울, 포 계곡의 트레비아 강변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서막을 장식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한니발의 교묘한 전술 앞에 로마군은 참담한 패배를 맞이한다.
한니발의 기동과 로마군의 붕괴
로마군이 공포에 질려 카르타고군 본대 쪽으로 밀려나려던 바로 그 순간, 한니발은 중앙 부대에게 양익으로 물러나 갈리아 보조병을 상대하는 좌익을 지원하도록 명령했다. 로마군의 패주는 한순간의 의심 여지도 없이 확정되었다.
보조병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본 로마군 본대의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모든 방면에서 싸워야 했던 로마군 가운데 불과 1만 명 정도만이 탈출에 성공했으며, 나머지는 도망칠 길 자체가 없었다.
처절한 생존자들의 탈출
살아남은 병사들은 수많은 적을 쓰러뜨리며 아프리카 중장보병의 중앙을 뚫고 빠져나왔다. 그러나 트레비아 강이 진영 입구를 막아버려 본영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비 때문에 동료들을 구원할 만한 장소조차 분간할 수 없었던 그들은 곧장 피아첸차(플라켄티아)로 향해야 했다.
이후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강으로 내달린 자들은 물에 휩쓸려 죽거나, 강 건너기를 주저하다 카르타고군의 칼날에 무참히 당했다. 도주하다 들로 흩어진 자들은 후퇴하는 부대의 발자취를 따라 피아첸차로 가는 길을 택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적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용기를 불러일으켜, 트레비아 강으로 뛰어들어 무사히 건너 아군 진영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혹한 속의 승리와 스키피오의 은밀한 철수
비와 눈이 뒤섞여 쏟아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혹한이 닥치면서 수많은 군마와 거의 모든 전투 코끼리가 목숨을 잃었다. 카르타고군 역시 강 너머까지 로마군을 추격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추위에 얼어붙은 나머지 승리의 기쁨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진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 밤, 참호선을 지키던 분견대와 대군 중 살아남은 소수의 잔존 병력이 뗏목을 타고 트레비아 강을 건넜지만 카르타고군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폭우가 거센 탓일 수도 있고, 지친 몸과 상처로 움직일 수 없어 못 들은 척한 것일 수도 있다.
집정관 스키피오는 은밀한 행군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부대를 피아첸차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다시 포(Po) 강을 건너 크레모나에 이르렀으니, 두 군대의 주둔 책임이 단 하나의 식민 도시에만 지워지는 상황을 피하려는 조치였다. 이로써 로마는 완패 속에서도 최소한의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