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비니에리(Carabiniers)는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 중기병을 대표하는 최정예 부대였다. '카빈총을 든 기병'이라는 이름처럼 화력과 기동력을 겸비한 이들은 황실과 제정을 거치며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1809년에는 독특한 흉갑과 로마식 투구로 무장한 기병으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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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9년 이전의 카라비니에리
1791년식 군복과 명칭의 유래
1804년 당시 카라비니에리의 군복은 1791년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유일한 변화는 모피 모자가 20cm 더 높아진 것뿐이었다.
부대의 명칭은 이들이 언제나 장비하고 다녔던 카빈총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흰색 테두리를 두른 스칼렛색 술 견장을 단 프랑스식 상의(habit à la française)를 착용했으며, 두 개의 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나폴레옹의 총애, 그리고 1809년의 대개편
1806년, 나폴레옹은 이들을 '기병 척탄병'이라 부르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그는 동생 루이(Louis)를 이 부대의 대령장(colonel général)으로, 처남 보르게즈(Borghèse)를 대령으로 임명했다. 그러다 1809년, 다소 기묘한 결정을 내려 카라비니에리를 일종의 흉갑기병(cuirassier)으로 개편했다. 낡고 검소했던 기존 군복은 흰색 코트, 동박(銅箔)을 씌운 이중 강철 흉갑, 그리고 로마식 투구로 대체되었다.
진품 두 점만 남은 로마식 투구
이 독특한 형태의 투구는 오늘날 진품 두 점만 전해지며, 그중 하나는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투구는 황동 껍데기에 리벳으로 동제 바이저와 후경(목 덮개)을 고정한 형태였다. 정수리에는 짙은 스칼렛색 말갈기 장식이 얹힌 높은 놋쇠 볏이 솟아 있었으며, 전체 무게는 약 2kg에 달했다.
1809년 이후의 군복과 장비
1809년부터 카라비니에리는 하늘색을 고유 색상으로 삼은 흰색 습복(habit-jacket)을 착용했다. 1812년 규정에 따르면 이 군복은 라펠이 없었고, 흰색 테두리의 하늘색 칼라, 같은 색으로 파이핑한 하늘색 턴백(turnback), 흰색 수류탄(그르나드) 장식이 특징이었다.
연대 간 구분도 뚜렷했다. 제1연대는 흰색 파이핑과 파란색 탭이 들어간 붉은색 페이싱을, 제2연대는 하늘색 페이싱과 파란색 페이싱 탭을 사용했다. 여기에 흰 실로 가장자리를 두른 스칼렛색 술 견장이 어깨를 보호했다. 양피지 또는 사슴가죽 바지는 상황에 따라 헝가리식 바지나 니트 승마 바지로 대체할 수 있었고, 야전에서는 평상시 말 장비 대신 양가죽 반 안장 깔개를 사용했다.
무장 또한 알차게 갖춰졌다. 카빈총 외에 권총 두 자루와 An XI형 중기병 사브르를 지녔다.
그러나 이 정예 부대는 참담한 결과로 끝난 러시아 원정에서 사실상 전멸했다. 귀환에 성공한 병력은 3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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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9년 이후의 카라비니에리와 신호수(트럼펫)
카라비니에리의 역사
카라비니에리의 시조는 앙리 4세(Henri IV)이다. 그가 중기병의 정예 요소로 창설한 것이 이 부대의 시작이었으나, 1788년에 이르러서야 두 개 연대로 구성된 독립 부대가 되었다. 이 연대들은 프랑스 혁명과 제정 시대를 거치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당시 군복은 『안 10년 군사 현황(L'État militaire de l'an X, 1802)』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국민 파란색 코트, 스칼렛색 페이싱과 라펠, 파란색 칼라, 곰모피 모자(본네 다우르송), 어깨띠, 그리고 흰색 브레이드 테두리를 두른 노란색 벨트."
마구 장비는 다음과 같았다.
"프랑스식 안장, 흰색 브레이드 테두리의 파란색 안장 커버, 네 모서리마다 새겨진 수류탄 문양, 수류탄 문양을 새긴 굴레."
1809년 12월 24일자 법령은 이들의 군복을 다음과 같이 변경했다. 흰색 코트, 동박을 씌운 강철 이중 흉갑, 바이저와 후경을 갖추고 황동 볏 위에 스칼렛색 말갈기 장식을 올린 투구. 무장은 소총, 사브르, 그리고 권총 한 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