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9년 10월 28일 월요일, 하루 동안 무려 921만 2,800주가 거래되었다. 뉴욕타임스 주가지수는 49포인트나 폭락했다. 단 하루의 하락폭이 지난 일주일 전체의 하락폭보다 컸던 것이다.
티커(자동 주식 시세 표시기)는 다시금 수백만 명을 어둠 속에 내버려 두었다. 사람들은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은행가 연합의 새로운 개입이 절실히 기다려졌지만, 그것은 끝내 오지 않았다. 조직적이든 아니든, 어느 누구도 이미 모든 사람을 사로잡은 매도 광풍을 멈춰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후 4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J.P. 모건 은행에서 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마친 은행가들은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상황에는 고무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검은 화요일, 하루에 1,641만 주가 쏟아지다
그러나 이 위기 역사에서 가장 긴 하루는 다음 날, 즉 10월 29일 화요일이었다. 단 하루 동안 무려 1,641만 주가 시장에 내던져졌다. 이번에는 참담한 재앙 그 자체였고, 본격적인 공황이 시작되었다.
지난주가 서민과 임금 노동자 등 '무고한 자들의 학살'이었다면, 이제는 부유층, 기업인, 전문직 종사자들이 평등주의의 쓴맛을 뼈저리게 경험할 차례였다. 주식 시장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행가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긴급 회의를 열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그날 그들의 권위는 주가보다 더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희망과 절망 사이, 끝나지 않은 추락
1929년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극심한 기복이다. 시장은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그리고 10월 30일에도 시장은 바닥이 아니었다. 하락은 이후 몇 주, 몇 달에 걸쳐 계속되었다.
11월 13일까지 72포인트까지 곤두박질친 뉴욕타임스 주가지수는 마침내 1932년 7월 8일, 58.46을 기록하며 최저점을 찍었다. 붕괴의 끝자락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2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역사는 반복될까, '기본적으로 견실하다'는 말이 들릴 때
1929년과 유사한 위기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언제든 제기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역사가 결코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지 않는다 해도,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경고 신호가 있다. 바로 사회의 중요 인사들이 "경제의 기본은 견실하다(fundamentally sound)"며 그런 비극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당시 후버 행정부가 그랬듯, 그런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진짜 걱정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