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미하일 구레비치 – MiG 전투기를 탄생시킨 소련의 전설적 항공 기술자

미하일 이오시포비치 구레비치(Михаил Иосифович Гуревич, 1892년 12월 31일 율리우스력, 1893년 1월 12일 그레고리력 쿠르스크 인근 루반치나 출생 ~ 1976년 11월 25일 모스크바 별세)는 소련의 저명한 항공 기술자이다. 그는 아르툠 미코얀과의 협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두 사람이 함께 이끈 미코얀-구레비치 설계국(OKB)은 이후 'MiG'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전투기들을 배출했다.

유년 시절과 교육

구레비치는 와인 양조 기술자 가문 출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0년 아흐티르카 고등학교를 은메달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하르코프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혁명 활동에 가담한 혐의로 1년 만에 퇴학당했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몽펠리에 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1914년 9월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귀국하지 못하고 러시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혁명 이후에는 하르코프 공과대학교 항공학부에 진학하여 1925년 물리학·수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재학 당시에는 동료 학생들과 함께 글라이더 2기를 직접 개발할 만큼 항공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항공 산업에서의 경력

졸업 후 구레비치는 국영 에너지 회사에 취직했지만, 1929년 회사를 떠나 모스크바로 이주한 뒤 항공 산업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후 소련 항공 산업의 여러 설계국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고, 1936년부터 1937년까지는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미국 마틴 사에 파견되어 최신 항공 기술을 연구했다.

귀국 후에는 더글러스 DC-3의 면허 생산 사업, 즉 리수노프 Li-2 개발에 참여했으며, 새로운 항공기 생산 기법의 도입에도 크게 기여했다. 1937년에는 폴리카르포프의 설계국인 OKB-1에서 설계 팀을 지휘하는 요직을 맡았다.

미코얀-구레비치 설계국과 MiG의 탄생

1939년 12월, 구레비치는 아르툠 미코얀이 이끄는 1호 공장의 신설 설계국 OKO에 합류하여 아나톨리 그리고로비치 브루노프와 함께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미코얀-구레비치 설계국(OKB-155)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수학적 토대를 구축한 핵심 인물이었다.

그의 계산과 설계는 특히 고속 비행 성능, 우수한 상승률, 그리고 높은 실용 상승 한도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는 MiG 계열 전투기가 빠르고 민첩한 성능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는 주로 미사일과 무인 순항 폭탄(플라잉 밤) 개발에 종사하며 설계국 산하 OKB-155-1 부서를 이끌었다. 1964년에는 과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같은 해 7월 1일 은퇴했다.

수상과 영예

구레비치의 헌신적인 업적은 다양한 훈장과 상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레닌 훈장을 네 차례 수훈했으며, 1957년에는 소련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다. 또한 1941년에는 MiG-1 개발 업적으로 첫 국가상을 수상했고, 이후 1947년, 1948년, 1949년, 1952년, 1953년에도 국가상을 거듭 수상하며 소련 항공 산업 발전에 남긴 공헌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