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에드몽 마랭 라 메슬레: 프랑스 공군 최고 에이스의 생애와 최후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 침공전에 참전한 프랑스 조종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로 손꼽히는 에드몽 마랭 라 메슬레(Edmond Marin La Meslée). 그는 단 한 차례의 전역에서 확인된 격추 16기를 기록하며 프랑스 공군 역사에 확실한 이름을 남긴 에이스입니다.

전적

확인된 격추 16기 · 추가 추정 격추 4기

생애

에드몽 마랭 라 메슬레: 프랑스 공군 최고 에이스의 생애와 최후
그는 1912년 2월 5일 프랑스 북부의 도시 발랑시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랑제콜 과정을 마친 뒤 모라느 비행학교에 진학하여 1931년 8월 1일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소집령보다 앞서 같은 해 11월 예비 장교학교에 자원 입교했으며, 1932년 9월 20일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하던 제2전투비행연대에 배속된 라 메슬레는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난 뒤에도 중사 계급으로 2년간 현역 복무를 이어갔습니다. 1936년 9월에는 공군 장교로서의 경력을 본격적으로 쌓기로 결심했고, 1937년 10월 당시 GC 115 산하 비행대였던 SPA 67에 소위 신분으로 배속되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그는 장 아카르(Jean Accart)의 지휘 아래 커티스 H-75 전투기를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에드몽 마랭 라 메슬레: 프랑스 공군 최고 에이스의 생애와 최후
1939년 7월 27일 GC 115는 쉬이프(Suippes)의 작전 기지로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가짜 전쟁'이라 불린 기간에는 적과의 접촉이 드물었고, 라 메슬레가 처음으로 실전 전과를 올린 것은 1940년 1월 11일이 되어서였습니다. 이날 그는 베르됭 상공에서 정찰부대 3.(F)/11 소속 도르니에 Do 17P를 기습, 레이 소위와 함께 이를 롱위 인근으로 격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격추전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그의 서신 한 통이 1940년 1월자로 작성되어 항공 잡지 《이카르(Icare)》 53호 '가짜 전쟁' 특집 88쪽에 게재되었으며, 이후 장 아카르에게 전해졌습니다.

본격적인 승리 행진은 독일군의 총공세 개시 이틀 뒤인 5월 12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그의 분대는 아르덴 지역에서 프랑스 보병을 급강하 폭격하던 융커스 Ju 87 슈투카 20여 기를 요격했습니다. 호위 전투기 없이 무방비하게 날던 슈투카들을 기습한 프랑스기들은 일대 사냥을 벌였고, GC 115는 십수 기의 격추를 보고했습니다. 이 중 라 메슬레 개인의 몫만 확정 3기, 추정 4기에 달했습니다.

이튿날에는 Bf 109 한 기를 격추했고, 5월 15일에는 헨셸 Hs 126 한 기를 공동 격추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도르니에 폭격기 한 기를, 5월 18일에는 21기 규모의 편대에서 하인켈 He 111 세 기를, 5월 19일에는 또 다른 하이켈 폭격기 한 기를 각각 격추했습니다. 5월 24일에는 생루(Saint-Loup) 인근에서 Hs 126 한 기를 격추하고 다음 날 한 기를 더 공동 격추했으며, 5월 26일에는 부대 동료 여덟 명과 함께 He 111 한 기를 공동 격추하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수적 열세에 놓인 전투에서도 늘 구멍투성이가 된 기체로 귀환하며 필사적으로 싸운 그의 투혼을 인정받아, 6월 1일 입원한 아카르의 뒤를 이어 그는 부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6월 3일에는 Hs 126 한 기의 격추를 공동 기록하고 추정 Do 17 한 기를 추가했으며, 나흘 뒤 수아송(Soissons) 상공에서는 Ju 88 한 기와 Hs 126 한 기 등 두 건의 추가 격추를 보고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전과는 6월 10일, 샤티용쉬르바(Châtillon-sur-Bar) 인근 지면에 충돌한 Ju 88 한 기를 공동 격추한 것이었습니다. 1940년 6월 25일, 확인 격추 16기와 추정 4기를 보유한 채 그는 부대와 함께 알제리로 철수했습니다.

에드몽 마랭 라 메슬레: 프랑스 공군 최고 에이스의 생애와 최후
이후 2년 반의 세월 동안 마랭 라 메슬레는 다시 싸울 기회만을 기다렸습니다.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횃불 작전' 이후 그의 부대는 벨 P-39 에어러코브라로 재장비를 갖추고 수송선단 호위와 연안 초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1944~1945년 겨울, 부대는 마침내 조국 해방 작전에 참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45년 2월 4일, '샹파뉴(Champagne)'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부대를 이끌고 리퍼블릭 P-47 선더볼트에 올라탄 마랭 라 메슬레 소령은 알자스 하르트 숲에서 독일군 차량 종대 공격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첫 번째 공격 패스에서 차량 한 대가 불타오르며 치솟은 검은 연기가 그의 시야를 크게 가려 버렸습니다.

에드몽 마랭 라 메슬레: 프랑스 공군 최고 에이스의 생애와 최후
상승 기동을 시도하던 순간, 그의 기체는 40mm 포탄에 정면으로 피탄되었고 천천히 지면으로 떨어졌습니다. 독일군이 조종석에서 그를 옮겨냈을 때, 그는 머리에 박힌 파편으로 치명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고 끝내 목숨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그가 추락한 자리에는 프랑스 조종사 면허의 날개 달린 별을 형상화한 거대한 석조 별이 세워져 있으며, 그의 유해는 바로 이 별의 한 갈래 아래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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