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벨로 숲 전투: 미국 해병대의 신화를 만든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

벨로 숲 전투: 미국 해병대의 신화를 만든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

벨로 숲 전투(Battle of Belleau Wood)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벌어진 전투로, 존 퍼싱(John Pershing) 장군이 총사령관을 맡은 미국원정군(AEF)이 처음으로 참전한 교전이자 1918년 연합군 대반격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라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전투는 1918년 6월 1일부터 6월 26일까지 마른강과 가까운 벨로(엔주) 남서쪽에 펼쳐진 숲에서 치러졌다. 제임스 G. 하보드(James G. Harbord) 장군의 지휘 아래, 제23보병연대와 해병대 여단으로 구성된 미국 제2 '인디언헤드' 보병사단 부대가 샤토티에리(Château-Thierry) 일대에 참호를 구축한 독일군과 맞서 싸웠다.

이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단일 전투에서 발생한 미군 전사자 수로 가장 많은 비극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벨로 숲 전투는 미국 해병대의 첫 번째 주요 교전이자 해병대 명성의 초석이 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미 해병대는 매년 전몰장병 추념일(Memorial Day)과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대표단을 이곳에 파견하고 있다.

전투 경과

1918년 5월 27일, 독일군의 엠 드 담(Chemin des Dames) 공세로 인해 누아용(Noyon)과 랭스(Reims) 사이의 프랑스 방어선은 깊이 50km에 걸쳐 붕괴되었다. 5월 31일, 장교 1,063명을 포함해 총 26,665명 규모의 미국 제2사단은 샤토티에리 구역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포슈(Foch) 장군의 지침에 따라 즉각 반격에 나선 프랑스 제6군은 제2사단을 실전에 투입했다.

6월 5일 밤, 해병대와 미국 제23보병연대(제9보병연대는 예비대로 유지)가 반격을 개시하여 벨로 숲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6월 6일에는 제23보병연대 소속 한 개 대대가 전사 27명, 부상 225명의 손실을 입었다. 6월 10일, 하보드 장군 휘하의 해병대는 벨로 숲 남부를 장악했다. 이틀 후 그들은 저항 거점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포로 500명을 생포했으며, 기관총 35정과 예비 탄약까지 노획했다.

이후 열흘 동안 격렬한 반격에 시달린 끝에, 연합군은 6월 25일 마침내 숲 북쪽 끝단에 버티던 마지막 독일군을 몰아냈다. 이 과정에서 포로 300명을 추가로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부레슈(Bouresches) 마을까지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3주간의 전투 끝에 숲은 6월 24일 완전히 함락되었다. 그동안 제9보병연대는 샤토티에리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서 마른강 방면의 도로를 봉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일 밤에는 말론(Malone) 대령이 지휘하는 제23보병연대가 보(Vaux) 공격을 감행했으며, 제2사단은 7월 6일 미국 제26사단과 교대로 철수했다.

프랑스의 표창

전투 며칠 뒤, 프랑스 제6군 사령관 드구트(Degoutte) 장군은 다음과 같이 포고문을 발표했다.

"미국 제2보병사단 제4해병여단이 치열한 전투 끝에 부레슈를 함락하고, 수적 우위의 적군이 필사적으로 방어하던 벨로 숲 요새를 점령한 빛나는 전공에 대하여, 제6군 사령관은 모든 공식 문서에서 앞으로 벨로 숲(Bois Belleau)을 '해병대 여단의 숲'(Bois de la Brigade des Marines)으로 명명할 것을 결정한다."

또한 1918년 10월 22일자, 총사령관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이 서명한 프랑스 육군 최고사령부 명령 제10805-D호에 따라, 준장 제임스 G. 하보드가 지휘하던 미국 제4여단은 이 결정적인 전투의 공로로 프랑스 육군 포상 표창을 받게 되었다. 해당 여단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 웬들 C. 네빌(Wendell C. Nevill) 대령 지휘하의 제5해병연대
  • 앨버터스 W. 캐틀린(Albertus W. Catlin) 대령 지휘하의 제6해병연대
  • 에드워드 W. 콜(Edward W. Cole) 소령 지휘하의 제6기관총대대

USS 벨로 우드

이러한 무공을 기리기 위해 1942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미국의 경항공모함이 'USS 벨로 우드(CVL-24)'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 배는 1953년부터 1960년까지 프랑스 해군에 인도되어 '부아 벨로(Bois Belleau)'라는 이름의 항공모함으로 운용되었다.

1978년부터 2005년까지는 'USS 벨로 우드(LHA-3)'라는 이름이 다시 미국 해군 함정에 부여되었는데, 이는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어 일본 사세보에 기지를 둔 강습헬기 상륙함이었다. 최대 20노트로 항행할 수 있는 이 함선은 2,000명 규모의 해병대 상륙부대를 수송할 수 있었으며, 수직이착륙 항공기 6대와 헬리콥터 23대를 탑재하고, 선창에는 각종 상륙정을 수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