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안개 속의 거함들
1916년 5월 31일, 제1차 세계대전 최대의 해전이자 역사상 마지막 전함 대 전함의 포격전이 북해 유틀란트 반도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당시 정찰기는 희귀했고 성능도 제한적이었기에, 영국 함대 사령관 젤리코(Jellicoe) 제독과 독일 함대 사령관 셰어(Scheer) 제독은 모두 경순양함 정찰대에 의존해 적을 찾아야 했다. 비티(Beatty)와 히퍼(Hipper)가 이끄는 두 정찰 순양함 그룹은 새벽 02:00에 최초 조우했고, 짧은 포격전 끝에 각자 주력 함대를 유도하기 위해 회항했다.
양측 전력과 지휘관
영국: 비티의 전투순양함대
대중적 인기가 높고 공격적이며 때로 충동적이기까지 했던 비티 제독은 로시스(Rosyth) 항을 모항으로 제1·2·5 순양전대, 제1·2·3 경순양전대, 제1·9·10·13 구축함전대 등 총 52척을 지휘했다.
독일: 히퍼의 정찰 부대
히퍼 제독은 40척의 순양함과 구축함으로 구성된 정찰 부대를 이끌며, 셰어 제독의 주력 함대가 대기 중인 남쪽으로 비티를 유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해전 전개: 덫과 역습의 연속
1단계: 순양함 간의 결투 (03:45~04:30)
03:45, 비티와 히퍼가 시계 15km 거리에서 포격을 개시했다. 석탄 연기와 화약 연기가 시야를 완전히 가렸고, 서쪽 햇살이 영국 함정을 실루엣으로 비추는 바람에 독일 측이 조준 이점을 얻었다. 04:03, 폰 데어 탄(Von der Tann)의 포탄 5발을 맞은 인디패티거블(Indefatigable)이 탄약고 폭발로 2분 만에 침몰, 1,000명 이상이 수장됐다. 양측은 구축함 2척씩을 잃었다.
04:05 젤리코는 후드(Hood) 제독의 제3 순양전대를 비티 지원용으로 전진시켰다. 이어 퀸 메리(Queen Mary)마저 폭발로 잃자 비티는 "오늘 우리 빌어먹을 배들에 뭔가 문제가 있군"이라고 탄식했지만, 오히려 진로를 돌려 독일 측에 더 접근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제5 전대 합류와 영국 포술의 우세(12~15인치 주포 대 독일 11~12인치)로 전세는 역전돼 히퍼는 위기에 몰렸다.
2단계: 셰어 주력 함대 등장과 비티의 북진 (04:30~06:15)
04:30 셰어의 주력 함대가 나타나자 비티는 불리해졌고, 사우샘프턴(HMS Southampton)의 보고로 독일 주력 함대 출동 사실을 알게 된 건 '불쾌한 놀라움'이었다. 히퍼의 유인 작전이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사우샘프턴이 너무 남쪽으로 빠진 덕분에 비티는 덫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04:40 비티는 독일 함대를 젤리코의 그랜드 함대(주력 함대) 쪽으로 유인하려 북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기함 라이언(Lion)의 신호 오류로 에반토머스(Evan-Thomas) 제독의 제5 전대(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4척)만 홀로 남았으나, 이들은 15분간 독일 함대 전체를 상대로 분전했다. 바햄(Barham)·발리언트(Valiant)는 히퍼를, 워스파이트(Warspite)·말라야(Malaya)는 셰어를 공격해 쾨니히(König), 그로서 쿠어퓌르스트(Großer Kurfürst), 마르크그라프(Markgraf), 제이들리츠(Seydlitz), 뤼초프(Lützow), 데어플링거(Derfflinger) 등에 명중탄을 안겼다.
히퍼 시야에서 벗어난 비티는 북북동으로 선회해 제5 전대와 협공 태세를 갖췄고, 히퍼는 재차 퇴각했다. 셰어는 중포 사거리 안으로 비티를 끌어들이려 추격했다. 젤리코의 순양전대들이 전속력으로 다가왔으나, 독일 함대 진로를 확신할 수 없어 섣불리 전개하지 못했다. 06:15가 돼서야 젤리코는 셰어 함대의 위치와 진로를 파악했고, 연기와 포화 속에서 비티 부대와 합류했다.
3단계: 그랜드 함대 전개와 셰어의 위기 (06:15~19:00)
연기 속에서 그랜드 함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셰어에게는 악몽이었다. 영국 함대는 사거리 진입 즉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셰어는 전 함동시 선회(Gefechtskehrtwendung)라는 고난도 기동으로 연막 뒤로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포술이 빛을 발해 워스파이트와 워리어(Warrior)를 무력화하고 디펜스(Defence)를 폭침시켰다. 워리어는 귀항 중 침몰했고, 06:33 인빈서블(Invincible)이 포탑 직격으로 탄약고 폭발, 후드 제독 포함 700명이 전사했다.
하지만 독일도 대가를 치렀다. 뤼초프가 항행 불능이 됐고 다른 순양함들도 중파됐으나, 우수한 수밀 구획 설계 덕분에 연쇄 폭발은 면했다. 셰어는 다시 진로를 바꿔 영국 전열 돌파와 자국 기뢰밭으로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또다시 드레드노트 전열과 맞닥뜨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독일 구축함들의 대규모 뇌격 공격이 독일 함대를 구했다. 뇌격 자체 피해는 미미했으나, 젤리코는 '뇌격 회피를 위한 진로 변경'을 선택했고, 영국 함대가 다시 정렬했을 때 셰어는 이미 15마일(약 28km) 밖이었다.
4단계: 젤리코의 신중함과 야간전 회피 (19:00~다음 날 03:00)
젤리코는 추격을 포기했다. 셰어가 U-보트나 기뢰밭으로 유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남진하며 셰어와 독일 본토 사이에 끼어들려 했다. 19:10 양 함대가 재접촉, 셰어는 히퍼에게 돌격을 명령하고 주력 함대는 이탈시켰다. 20분 뒤 히퍼도 물러났다. 젤리코는 같은 진로 추적을 피하며 남서로 선회, 20:15 히퍼를 다시 요격해 뤼초프를 격침하고 제이들리츠·데어플링거에 중상을 입혔으나, 야간전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재차 추격을 중단했다. 셰어와 히퍼는 6월 1일 03:00경 자국 기뢰밭 안으로 들어왔고, 셰어에게는 '기적 같은 생환'이었다. 대낮에 다시 마주쳤다면 생존 확률은 희박했다.
전과 분석: 수치 너머의 진실
전후 선전전에서는 독일이 '격침 척수'를 내세워 승리를 주장했다. 영국은 순양함 6척, 구축함 8척 등 6,100명 전사, 독일은 전함 1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3척 등 2,550명 전사로 독일 피해가 적어 보였다. 그러나 이 집계는 중파된 독일 함정들이 수개월간 전투 불능 상태였다는 점을 누락했다. 수리 완료까지 독일 주력 함대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젤리코의 변명과 전략적 승리
젤리코가 독일 함대를 더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그는 '함대 전력 보존'이 최우선이었다고 답했다. 이 전략은 전쟁 말까지 독일 함대가 출동하지 못한 사실로 입증됐다. 6월 2일 젤리코가 "4시간 내 출동 가능"이라고 영국 정부에 보고한 반면, 독일 함대는 더 이상 전투 수행 능력이 없었고, 지휘관들도 수리 후에도 다시 영국 해군과 정면 대결을 시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