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군은 왜 준비되지 않았는가
독일의 침공 앞에서 소련군이 그토록 무방비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소련 정부와 최고사령부는 침공 가능성을 시사하는 심각한 징후들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독소 국경 일대와 폴란드 영토에 독일군이 대규모로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도 못 본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전쟁 발발 시점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정부 수반 스탈린과 그의 측근들은 독일이 1942년 여름 이전에는 공격해 올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붉은 군대에게는 재편성과 재무장을 마칠 시간이 아직 1년 가량 남아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 더해 소련 지도부는 전쟁 자체를 피하거나, 어렵다면 최소한 발발 시기를 늦추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모두 빗나갔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최전선의 병사들이 치러야 했다.
하루 늦은 경계 명령
소련 최고사령부가 국경 군관구 부대들에 배치 명령을 하달하고 독일군의 기습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함께 전달한 것은 6월 21일 밤에서 22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이르러서야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지시가 군단과 사단 참모부에 닿던 바로 그 순간, 소련의 수많은 도시들에는 이미 독일 항공기에서 떨어지는 폭탄이 쏟아지고 있었고, 적 지상군은 여러 지점에서 국경선을 넘어 진입한 뒤였다.
동부 전선 대전쟁의 세 단계
동부 전선에서 벌어진 대전쟁(대조국전쟁)은 크게 다음의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 제1단계: 1941년 6월 22일 ~ 1942년 11월
• 제2단계: 1942년 11월 19일 ~ 1943년 12월
• 제3단계: 1943년 12월 말 ~ 1945년 5월 9일
이 밖에 소련군이 일본 관동군을 상대로 벌인 짧지만 결정적인 만주 전역(1945년 8월)은 전체 전쟁사에서 별도의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