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90년 쿠웨이트 '교량 전투'… 사담의 정예부대가 드러낸 슬픈 민낯

1990년 쿠웨이트  교량 전투 … 사담의 정예부대가 드러낸 슬픈 민낯

'교량 전투', 혹은 잘 알아트라프 전투는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첫날 벌어진 교전이다. 쿠웨이트 서부 알자흐라 인근의 두 교량은 이라크군이 수도 쿠웨이트 시티로 진입하기 위한 필수 통과 지점이었다. 이 침공은 훗날 서방 세계의 개입, 즉 걸프전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소수의 쿠웨이트 부대가 압도적인 이라크 정예군을 상대로 펼친 예상 밖의 저항은 이라크군의 근본적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되었다.

이라크의 침공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의 정예로 일컬어지던 공화국 수비대(RG)를 선봉으로 한 이라크군은 국경 유전 개발권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되자 곧바로 작은 토후국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당시 미국이 사담의 침공을 묵인 혹은 부추긴 뒤, 나중에 응징할 명분을 만들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침공군의 선봉은 라아드 알함다니 준장이 지휘하는 공화국 수비대 '함무라비' 사단과 '메디나' 사단 소속 기갑 부대들이 맡았다. 반면 쿠웨이트군은 병력이 극히 얇았고, 이슬람 명절 휴가로 부대를 떠난 병사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사렘 마수드 알수루르 대령은 제35여단 산하 병력을 신속히 규합해 저항을 조직했다.

알수루르 대령의 지휘 아래 모인 전력은 다음과 같다. 제7전차여단 소속 전차 3량과 처프틴 전차 26량, 제8전차여단 제3중대의 처프틴 10량, 제57기계화보병대대 제1중대(BMP-2 5량 및 M-113 다수), 제51포병중대의 M109A2 자주포 7문, 그리고 TOW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한 M901 차량 일부였다.

이라크군 쪽에서는 '함무라비' 사단이 기계화 여단 2개와 장갑 여단 1개를, '메디나' 사단이 장갑 여단 2개와 기계화 여단 1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두 사단은 소련제 T-72 전차와 BMP-1·BMP-2 장갑차로 무장했으며, 실제 전투에는 '함무라비'의 제17여단과 '메디나'의 제14여단이 투입되었다.

함정 속으로

쿠웨이트군은 8월 1일 심야에 고도 경계 태세에 들어갔지만, 연료와 탄약 보급까지 마치는 데 약 8시간이 걸렸다. 알수루르 대령은 8월 2일 새벽 4시 30분 M901 차량들을 먼저 이끌고 출발했고, 나머지 병력은 오전 6시에 뒤따랐다. 쿠웨이트군은 두 개의 주요 도로 축이 교차하는 지점, 두 교량 인근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동안 '함무라비' 사단 제17여단은 이미 알자흐라 서쪽에 도달해 있었다. 이라크군은 저항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전 정찰도 없이 종대 행군을 하며 측면 경계 초병조차 배치하지 않은 채 진격하고 있었다. 게다가 정예라 불리던 이라크 부대는 병력 훈련 부족과 통신 수단 부족으로 부대 간 소통에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포화

이라크군은 기습을 당한 채 오전 6시 45분 첫 발의 포화를 받았다. 쿠웨이트군의 처프틴 전차들은 1~1.5km 거리에서 사격을 개시했고, 그 화력은 매우 정확하고 강력했다. 이라크군은 반격을 시도했지만 반응은 더디고 대체로 무효였다. 쿠웨이트군은 적 전차는 물론 장갑차와 일반 트럭까지 집중 공격했고, 견인 차량에 실려 가던 이라크 자주포 1문을 차량째 파괴하는 전과도 올렸다.

그럼에도 이라크군은 적의 포화와 피해에도 불구하고 진격을 강행했다. 오전 11시경에는 이번에 '메디나' 사단이 같은 덫에 빠졌는데, '함무라비'의 참패 소식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이라크군이 상당한 피해를 입고서야 전투 대형을 펴고, 수세에 몰린 소수의 쿠웨이트군을 압도하려 시도했다.

결국 쿠웨이트군은 포위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후퇴를 강요받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을 넘어 오후 4시 30분경 철수에 성공했다. 그들은 끝내 패배하지 않은 채 전장을 떠났다.

작은 전투, 큰 징후

교량 전투는 규모야 작았지만, 이라크군의 비극적 약점을 여실히 보여준 교전이었다. 정찰의 부재, 열악한 통신, 경직된 지휘 체계 — 이러한 결함들은 몇 달 뒤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참패로 몰아넣은 바로 그 요인들이었다.

이 전투에서 쿠웨이트군은 전사 4명, 부상 20명을 냈을 뿐 전차는 한 대도 잃지 않았다. 반면 이라크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약 30대의 전차를 잃었음에도, 정작 아무런 손실도 없었다고 발표했다.